풍경과 이야기2020. 1. 18. 05:16

바다낚시 멀미 경험

 

지난 연말, 교회 집사님들과 바다낚시를 갔다. 처음 가는 바다낚시라 긴장도 되었고, 주변에서 바다낚시 가서 겪을 수 있는 '멀미'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름 잘 대비한다고 했는데, 그만 출항 후 1시간 30분 되는 시간부터 멀미가 시작되었다.

 

금문교 밑을 지나 들어간 태평양의 파도는 거칠었다. 처음에는 파도에 몸을 실어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출렁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멀미가 왔다. 마인드 콘트롤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건 놀이기구야. 그냥 즐기면 돼.'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마인드 컨트롤의 임계점을 넘어선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그냥 바닥에 눕고만 싶었다.

 

선실 안 의자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이미 잡고 있어 자리 양보 부탁을 할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도 아니었고, 대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었지만, 러시아 사람들과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나는 선실 안에 눕는 것을 포기하고, 그나마 한적한 선수에 누웠다. 그런데, 파도가 거칠어지며 배 안으로 들이친 바닷물이 누운 나를 덮쳐 왔다. 손 하나만 까딱여도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덮쳐 오는 파도를 온 몸으로 받으며 견뎠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더 갔다.

 

세 시간 항해 후,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전 9.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배가 서니 파도에 배는 더 출렁이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았다.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바다낚시를 시작한 덕에, 선실 안의 의자가 비었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선실 안 의자에 몸을 눕혔다. 차가운 뱃바닥에 눕는 것보다 나았다. 그런데 문제는 추위였다. 이미 바닷물을 온 몸에 뒤집어 쓴 뒤라 바닷바람이 솔솔 불면서 몸을 춥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핸드폰 차저(charger)겸 손난로(hand warmer)를 부여 잡고 추위를 참았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그 작은 물건이 나의 유일한 생명 보존 장치였다. 나는 그 자그마한 물건이 뿜어내주는 온기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잠이 들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그 손난로가 마중물이 되어 잠이 들 수 있었다.

 

얼마를 잔 것일까. 잠에서 깨어 보니 아직도 사람들은 고기를 낚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몸은 따뜻해져 있었다. 몸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했다. 몸은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하게 위해서 잠이 들었을 때 저절로 몸의 체온을 높였다. 깨어 있을 때 몸의 체온을 높이려고 노력해도 아무 소용 없더니, 잠이 들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데 몸은 스스로를 보호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 들기 보다, 자기 자신을 그냥 놓아버릴 때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생명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적절한 삶의 체온을 선물로 주는 것 같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배멀미를 하며 꼬박 8시간을 배 안에 누워 있었다. 8시간 동안 배멀미 하며 신음 가운데 있었던 나를 돌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너무 춥다고, 혹시 난로 있냐고 선장에게 물었을 때, 그런 거 없다고, 그냥 투박한 우비 하나 건네 받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동안, 그리고 뭍으로 돌아오는 동안, 8시간 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나를 돌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 배 안의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준 것이었다. 배멀미에 고통 당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들은 아무 것도 해 줄 게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같다. 차라리 아무런 시선을 주지 않는 것, 아무 말을 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입을 열 힘조차 없었던 나에게 시선을 주고 말을 붙였다면, 나는 정말로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선실 안의 한 의자(4, 5명이 앉을만한)를 차지하고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지만, 그 누구도 누워 있는 나한테 일어나라고, 조금 비켜달라고 말을 하거나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무언으로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고, 돌봐준 적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돌봐주었던 것이다.

 

8시간의 멀미는 배가 다시 금문교 밑을 지나 항구로 들어 왔을 때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두 다리가 뭍을 밟자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멀쩡해졌다. 형편 없이 젖었던 옷은 모두 말라 있었고,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몸은 오히려 상쾌했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도 참 신비스러운 것이다. 아무도 나를 돌봐준 이 없으나, 모든 이가 나를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삶의 무한한 신비에 휩싸였다. 그리고, 문득, 먼 바다를 아득히 쳐다보며 삶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깊은 묵상에 잠기게 되었다. 삶은, 사람은 참 신비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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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