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0. 12. 27. 15:42

2010 12 19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이사야 7:10-16, 마태복음 1:18-25

제목: 사랑하면 들린다

 

아하스 왕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요? 유약하다고 해야 할까요? 무지하다고 해야 할까요? 믿음이 없다고 설명해야 할까요? 아무튼,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같은 대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불신앙에 빠지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하스 왕은 지금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아람 왕 르신하고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해서 자기를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당시 남유다 왕국은 세력이 매우 약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예를 들면, 북한하고 중국하고 손잡고 한국을 치러 오는 형국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하스 왕은 마음이 마구 흔들립니다. 그의 마음을 7 2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오늘 말씀은 이렇게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나라가 망할까봐, 벌벌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굉장히 흥미로운 말로 표현을 합니다. 너무 유명한 구절이죠?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할 때 쓰인 말씀입니다. 14절입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서의 핵심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징표를 말하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것에서 아하스 왕은 위로를 받고 새힘을 얻었어야 합니다. 임마누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시는 말씀이, 이 아이가 선악을 분별할 나이가 되기도 이전에, 아하스 왕과 남유다 왕국을 괴롭히던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람은 주전 732년에 앗수르에게 병합되었고, 북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졌는데, 아하스 왕은 그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한 일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습니다. 안방에 적을 들여 놓은 일을 한 것이지요.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지금 당장의 위기를 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앗수르는 결국 가장 큰 적이 될 나라지 아군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역대하 28장의 말씀을 보면, 앗수르는 도와주러 와서는 남유다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남유다를 침략해서 약탈해 갑니다.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또 다른 본문인 마태복음을 보면 요셉에게 같은 말씀이 내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입니다. 이스라엘의 결혼법은 약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약혼이 곧 결혼은 아니지만 약혼한 사이는 결혼한 사이와 별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부터는 서로에게 구속력을 가집니다. 만약 약혼 한 시기에 성적인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율법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사이인데, 그만 마리아가 합방도 하기 전에 임신을 한 겁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지금이야 혼전 임신 같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들 생각하지만, 이 당시에는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마리아에게 아무런 해가 끼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조용히, 아무도 눈치 못 체게,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19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때 의롭다는 의미는 율법을 잘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의로움과 명성에도 손상이 안 가고, 마리아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요셉에게 말합니다. 20절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그리고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 왕에게 내려졌던 말씀이 요셉에게도 내려집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하스 왕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오히려 마음이 강팍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망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리고 왔다고 오늘 말씀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구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이 더 확실한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하스 왕에게 전해진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이고, 요셉과는 달리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서 직접 눈 앞에서 전해진 말씀입니다. 보이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전해진 말씀은 현실이 아니라 꿈 속에서, 그리고 천사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두 말씀 중 어떤 말씀이 더 확실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더 신뢰하십니까?

 

물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이나, 꿈을 통해서 전해진 말씀이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똑 같은 말씀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하스 왕에게 전해진 말씀이 더 확실한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말씀이니까요! 꿈 보다는 현실이 더 확실한 겁니다. 많은 분들이 꿈을 오히려 더 확실하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긴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꿈을 통해서 뭔가 봤다, 들었다 하는 것 자체를 무슨 신통력을 지니고,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는데,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직접 듣고, 요셉은 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둘 중에서 더 확실한 방법으로 전해진 것은 아하스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누가 더 잘 들어야 할 상황입니까? 아하스 왕입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요셉은 그것이 꿈으로 전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만큼 듣게 되어 있습니다. 들음과 행동은 곧바로 연결 되는데,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행동하게 됩니다.

 

손쉬운 예로, 자식과 남편이 하는 말 중에 누구의 말을 더 잘 듣게 됩니까? 자식이 엄마, 이리로 와 보세요! 엄마, 이거 해주세요.” 그러면 이상하게도 자식의 말에는 능력이 있는지, 그래.. 하면서 갑니다. 그런데 남편이 부르거나 뭐 해달라 그러면, “왜 자꾸 불러싸요! 왜 자꾸 사람 귀찮게 해요!”하면서 핀잔을 줍니다. 이미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었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똑 같은 말씀이 주어졌는데, 아하스 왕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말씀을 듣고 분부대로 했다고 합니다. 결국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아하스 왕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는지는 아하스 왕의 행적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평소에 전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19절에서 그리고 있듯이,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의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평가의 다른 말입니다.

 

요즘에 한국에서 식사와 관련해서 이런 농담이 유행한답니다. 하루에 한 끼도 집에서 안 먹는 남편을 일컬어 영식이 양반이라고 부르고, 하루에 한 끼만 집에서 먹는 남편을 일컬어 일식이 분, 그리고 하루에 두 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일컬어 두식이 놈, 그리고 하루에 세 끼를 집에서 챙겨 먹는 남편을 일컬어 삼식이 새끼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하루에 세 끼와 간식까지 꼬박 챙겨 먹는 남편을 뭐라고 부르는 지 아십니까? 삼식이 간나 새끼라고 한답니다.

 

사랑이 식으면, 밥 차려 달라는 말도 듣기 싫어집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서, 가족들 간의 사랑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또는 부인이 하는 말이, 또는 자식이 하는 말이 들리십니까?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만큼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끼리도 때로는 말이 안 통한다, 하면서 서로를 헐 뜯고 미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부족하니까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마시고,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하십시오. 사랑하지도 않는데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하니까 그게 잘 안 되고 힘들고 그런 겁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말이 귀에 들리고,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저절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만큼 듣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다는 겁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는 형국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 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내 마음에 합한 것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순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임신한 여인을 데려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했던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의 입장에서 이 일을 묘사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입장에서 이 일을 묘사합니다. 거기에서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일생일대의 위기요 위험한 일을 받아들입니다. 돌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자는 잠시 위험에 처해질 수 있으나, 결국 위대한 신앙의 선조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자는 잠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결국 멸망 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면 들립니다. 사랑하는 만큼 들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저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징표요 말씀입니다. 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하스 왕에게 전해졌던 말씀과 천사를 통해서 꿈에서 요셉에게 전해졌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야 합니다. 십자가를 사모하십시오. 그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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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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