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1. 12. 29. 14:37

사랑 받은 사람이 십자가도 진다

(누가복음 2:41-52)

 

1.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가장 선호하는 인물은 ‘솔로몬’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솔로몬’같은 지혜를 얻어 공부를 잘 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사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간구한 지혜는 공부 잘 하게 해달라는 지혜가 아니라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있는 지혜였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이 ‘지혜’를 얻어 공부를 잘 하게 되고, 그리고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앞가림 잘 하며 살아가기를 간구한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이렇게 늘 애잔하다.

 

2.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두 번째로 선호하는 인물은 ‘다니엘’이 아닌가 싶다. 다니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상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올랐기 때문에 그처럼 아이들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래서 아이들이 다니엘처럼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이 선호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친구들 때문일 것이다. 다니엘에게는 세 명의 신실한 친구들이 있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다니엘을 떠올리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다니엘처럼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3. 그렇다. 아이들에게 ‘지혜’와 ‘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흐뭇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얻게 되고, 다니엘과 같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놓치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듯싶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솔로몬의 이야기도 좋고, 다니엘의 이야기도 손색이 없지만,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정말로 많은 영감을 준다. 솔로몬의 지혜와 다니엘의 친구들을 간구하는 것은 신앙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 일은 신앙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4. 예수님이 탄생할 때의 이야기 빼놓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 곳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누가복음 2장 외에는 없다. 열 두 절로 되어 있는 이 짧은 이야기는 아주 깊은 신학적, 인문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서 예수의 역할은 매우 수동적이다. 그러나 이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예수의 역할을 매우 능동적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예수이다. 그는 부모님을 따라 순례의 행위로서, 그리고 신앙의 행위로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행한 일은 매우 독특하다.

 

5.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번,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율법을 진지하게 지켰던 요셉과 마리아는 마을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어 4, 5일 걸렸을 순례의 여정을 떠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잘 도착했고, 예배도 잘 드렸고, 무리들과 함께 집으로 귀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리 속에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를 찾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성전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마침내 예수를 발견한다.

 

6.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 간의 대화가 참 흥미롭다. ‘선생들(the teachers)’ 사이에 있던 예수를 발견한 어머니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걱정하며 찾았는지 모른다”(48절). 당연한 어머니의 반응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49절). 열 두 살 먹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하는 대답 치고는 매우 당돌하다. 예수는 부모님이 자신을 찾아 다녔다는 것 자체를 의아해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평소 행동을 생각해 보았을 때, 부모님은 자신을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7. 예수는 나사렛에 있을 때도 언제나 회당에 가서 ‘선생들’과 시간을 보낸 듯싶다. 그래서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제가 어디를 가나 회당에서 선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뭣 하러 저를 찾아 다니셨어요. 그냥 여기로 오셨으면 바로 저를 찾으실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부모들은 괜한 걱정을 한 것이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맨 것이다. 예수의 평소 습관을 생각했더라면, 요셉과 마리아는 다른 데 갈 필요 없이, 걱정할 필요 없이, 선생들이 있는 곳에 갔으면 될 일이었다.

 

8. 우리는 수많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말씀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영어로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NRSV)”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이미 열 두 살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의식(self-consciousness)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았고, 또한 자기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할 줄 알았다.

 

9. 열 두 살 밖에 안 된 어린 예수가 보여주는 이러한 자의식과 신앙은 솔로몬에게 있었던 지혜, 그리고 다니엘에게 있었던 친구들과 더불어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간구해야 하는 삶의 자세이다. 지혜를 간구하고, 좋은 친구들을 간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는 자의식을 갖는 것과 신앙의 간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삶의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를 신앙인으로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있기를, 그리고 다니엘이 받은 축복처럼 좋은 친구들이 있기를 간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의식(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이 생기고, 그 자의식(self-consciousness)을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God’s purpose for one’s life)과 연결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른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10. 지혜를 얻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 두 살 먹는 어린 예수에게서 보듯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즉 순종을 배우는 것은 신앙인의 최고 경지이고 삶의 꽃이다. 우리의 인생이, 또한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지혜를 얻어서 공부를 잘 하게 되고 그래서 유능한 인재가 되고, 또한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화려한 인맥을 쌓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만 멈추고 만다면, 그것이 우리가 신앙을 갖는 것의 목적이라면, 이 얼마나 사사롭고 기복적인 신앙이고 인생인가. 믿는 사람의 인생과 안 믿는 사람의 인생이 무엇이 다른 게 있겠는가.

 

11.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우리의 인생을 사사롭고 기복적인 인생에 머무는데 그치게 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공적인 영역으로, 무엇보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구원 사역에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이다. 순종은 운명이나 정치적 강압처럼 우리의 인생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순종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평안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영원한 생명)은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순종은 곧 믿음인 것이다.

 

12.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Did you not know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이 말은 한 어린 예수는 그냥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보통 사람 같으면 아이를 예루살렘에 머무르게 하고 아이의 명민함을 알아본 선생들에게 맡겨 유학 시켰을 텐데, 어린 예수는 그곳에 머물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나사렛 시골로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부모님과 함께 머물며 부모님께 순종하며 지낸다. 순종은 일차적으로 선생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13. 마지막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리고 예수는 지혜와 키가 점점 더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52절).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성장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로는 이것을 ‘in favor with God and men’이라고 표현한다. ‘favor’는 영어의 다른 단어로 ‘grace’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은혜 또는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호의(favor)’를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따스한 마음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14.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로부터만 따스한 마음, 은혜, 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따스한 마음, 은혜, 호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간구할 때, 우리는 지혜와 좋은 친구들에 대한 간구에 더해서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따스한 마음, 은혜, 호의, 사랑받기를 반드시 함께 간구해야 한다.

 

15. 예수님의 삶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바쳐 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단순히 메시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는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서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태어났고, 그는 어린 시절을 겪었으며, 그는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에 오르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기꺼이 달릴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그가 살면서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이다.

 

16. 예수님이 살면서 사랑 받지 못했다면,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따스한 마음, 은혜, 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했던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수포도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 뜻을 이루었다. 바로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랑 받은 사람이 십자가도 진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결국 구원을 낳는다. 우리 더 사랑하고, 우리 더 십자가를 지자.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사람으로서 각자 삶에 주어진 십자가를 지자. 각자의 십자가를 잘 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서로 사랑하자.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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