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2020. 6. 20. 08:43

[시론] 하재연의 시 고고학자ㅡ 인간이란 무엇인가

 

지구라는 이상한 행성에서

죽음에 둘러싸여

가끔 사랑을 나누는

인간이라는 현상

ㅡ 하재연의 시 고고학자일부, <우주적인 안녕>에 수록

 

인간이란 무엇인가? 평생 질문을 해도 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시인의 서술처럼,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 현상이 아닌가 싶다. 뭔가 본질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현상 말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생각에로 회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플라톤을 말하고 싶지 않다. 존재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허무하고 아마득하여, 또는 너무도 찰나여서,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Westworld)’를 보면, AI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프로그램밍 된 삶은 삶이 될 수 없다는 인식, 존재는 의식(consciousness)’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거기서 나는 더 인간다운 AI를 본다. 인간은 오히려 인간 답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무엇인가에 쉽게, 또는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한동일은 <로마법 수업>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권리(Ius vivendi ut vult)”를 지닌 존재이다. 그는 로마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과도 같습니다”(서론에서).

 

인간은 참 이상한 행성에 살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빼고, 주변은 모두 죽음으로 덮여 있다. 인간은 죽음에 둘러싸여 그 죽음에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산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잊게 만들어 주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인간에게서 사랑을 빼내어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싶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도 참 허무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도 죽음의 그늘을 이기지 못하는 듯하다. 인간이 가진 착각 중 가장 비참한 착각은 사랑은 영원할 거야라는 착각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랑의 영원성을 시간의 길이에서 찾지 않고 그 사랑 자체에서 찾는다. 사랑이 시간적으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그 순간우리는 이미 영원에 들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현상’. 우리는 그 현상에서 무엇을 관찰할 수 있으며, 무엇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으며, 무엇을 읽어내지 못할까. 현상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감추는 상대방의 탓일까, 아니면 관찰해 내지 못하는 나의 탓일까.

 

시인은 인간이라는 현상을 이렇게도 말한다. “슬프고 아름다운 자국에 대해 / 자국으로만 남은 존재들에 대해.” 자국만을 남길 뿐인 인간이라는 현상은 어쩌면 영원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면 어떨까.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