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3. 2. 00:39

시편 11

정직한 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뵌다

 

시인은 여호와께 피했다고 말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물리적으로 성전으로 피했다는 말도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성전 자체가 무슨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머무신다는 말은 매우 성례전적인 신앙고백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은혜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지은 이유는 보이지 않게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이게 끔 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살았다.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생각 때문이다. 악인이 화살을 겨눌 때마다 시인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피했다. 시인이 자신이 겪는 위기와 고통을 악인이 쏜 화살에 비유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살은 시인의 시대에 가장 무서운 무기였다. 먼 곳에서 공격할 수 있고, 재빠르게 적을 해치울 수 있는 무기였다. 화살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다. 시인이 겪는 위기와 고통은 바로 이러한 무시무시한 무기로 공격하는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해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적들은 밝은 데서 그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데서쏜다. 뒤통수를 치고 술수를 쓰고 은밀하게 공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무서운 무기로 이렇게 은밀하게 공격하는데 거기에 안 당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위기와 고통은 이렇게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격인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악인의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은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이렇게 한탄한다. “의인이 무엇을 하랴?”(3)

 

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것이 최선이다. 악인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의인이 악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더 큰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돌보시고 당신의 큰 권능으로 우리를 곤경에서 구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은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좌절하기 쉽고 무기력해지기 쉽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린 것 같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악인의 공격이 지니고 있는 심리적 압박에 불과하다. 우리의 기분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와 늘 함께 계시고 우리를 환란에서 구원해 주신다.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악행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악인의 악행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의인들을 모른 채 하지 않으신다. 위기와 고통의 상황에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 이것을 믿는 자가 정직한 자이고, 그것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