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20. 5. 6. 04:29

아침 공복에 물 한 잔 마시기

 

나는 아침마다 공복에 물 한 잔을 마신다. 하루를 시작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습관이 굳어져서 이것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한 것 같지 않다.

 

사실, 내가 이렇게 아침마다 물 한 잔을 거르지 않고 마시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참 이상한 거다. 이것도 보고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군생활 시절, 육군본부에서 장군을 모셨다. 내가 군생활 하던 시절 육본은 대전 계룡대로 이사 간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육군본부에는 장군이 많은 터라, 모든 장군 운전병이 공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군을 모셨던 관계로 공관 생활을 했다.

 

인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육본에는 공관병을 따로 두지 않았다. '똘똘한 놈'을 뽑아 장군 운전병 및 공관병, 그리고 부관 역할을 함께 병행하게 했다. (이렇게 진술하고 보니, 내가 똘똘한 놈이라 장군 운전병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으나, 그런 의도는 아니다.)

 

혼자서 장군을 모시다 보니, 장군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내가 모시던 장군은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 나를 매우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그분이 누구인지, 이름을 대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 볼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장군하고 친해지다 보니, 서울 외박 나갔을 때는 장군과 사우나도 함께 가고, 당구도 같이 치고 그랬다. 우연히도 장군과 나는 육군본부 '전출동기'. 육군본부로 전출 온 날짜가 같다. 00년도 4 16. 참 신기한 거다. 그래서 꼬박 육군본부에서 군생활을 같이 하다, 나는 전역을 하고, 내 전역 시기에 맞춰 장군은 진급하여 전방부대로 갔다. (나중에 전방부대로 놀러가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군대에서 모시던 장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그때 장군이 아침마다 하던 습관 때문이다. 바로 장군은 아침마다 공복에 물 한 컵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그 물은 내가 약수터에서 떠오는 것이었고, 아침마다 마실 수 있도록 식탁에 올려 놓았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상병 말 호봉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하루는 그만 약수터에서 물 떠오는 것을 까먹은 적이 있다. 아침에 물을 컵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 두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이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수돗물을 받아 약수물인 양 식탁에 올려 두었다.

 

새벽마다(새벽 5 30분에 기상하셨는데, 물론 내가 깨워드렸다. 군생활 내내 새벽 5 30분에 장군 깨워드리느라 엄청 고생했다.) 기상하여 아침 운동을 나가기 전 물 한 컵을 드셨는데, 그날 물을 마시고 한 마디 하셨다. "오늘은 물맛이 왜 이렇게 다르냐!" 딱 걸린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 말씀 한 마디만 하시고 더이상 추궁하지 않으셨다. 뜨끔했다. 그 이후로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약수물 길어오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나는 그때 20대 초반 젊은이로서, 아침마다 공복에 물 한 컵 드시는 장군의 습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을 계산해 보니, 나는 지금 그때의 장군 나이에 다다랐다. 그리고 장군이 하던 것처럼, 나는 아침마다 기상하여 공복에 물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고 수돗물이 아니라 약수물(spring water/샘물)을 마신다. 수돗물이나 정수물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 맛이 다르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약수물을 공복에 한 컵 씩 마시게 된 것은 나의 젊은 시절 매일 같이 약수물을 마시던 장군의 모습이 뇌에 큰 기억으로 남아 자연스럽게 '모방'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매일 아침 물 한 컵 마시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겹기까지 한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아침마다 공복에 물 한 컵을 마실 것이다. 그리고 물을 마실 때마다 군생활의 추억이 떠오를 것이고, 성실하게 물을 길어 날랐던 그때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물을 마실 것이다. 물 한 잔 마시는 일에도 이렇게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 행복하고 감사하다.

 

*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아침마다 공복에 물 한 컵 마시시길 추천 드린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인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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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