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올 사랑]

 

교회 식구들과 지인들의 부활절 선물로 내가 택한 것은 정혜윤 CBS 피디의 저서 <앞으로 올 사랑>이다. 이 책의 시의적절함(relevance)은 두말할 필요 없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후변화와 팬데믹 상황 속에서 죽음이 난무하는 이 디스토피아 시대에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질문이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저자가 주목한 책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데카메론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휠쓸었던 흑사병의 고통 가운데 나오는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나온 책 치고 그 내용이 매우 발칙하기 때문이다. 흑사병으로 죽음이 난무하던 시대에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이야기를 진행한다. 10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열 가지의 주제에 대하여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나눈 이야기 형식을 담은 <데카메론>처럼, 정혜윤은 그 열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정혜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모두,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와 팬데믹 위기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방송사 피디로서 정혜윤은 수많은 이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그들과의 인터뷰는 이야기의 좋은 재료이다. 또한 그녀는 일상의 이야기와 더불어 본인이 읽은 소설의 이야기를 또다른 재료로 활용한다. 일상의 이야기와 소설의 이야기는 절적하게 버무려져, 우리 시대을 보듬는 '복음 같은 이야기'가 된다. 

 

최근 정혜윤 피디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인류세'가 무엇인지 모른단다. 인류세를 '세금'으로 안단다. 또한 도시가스랑 온실가스를 구분하지 못한단다. 이런 웃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기후위기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다. 정 피디는 한국에 해양생물보호구역(Sanctuary)를 만들고 싶다 했다. 예전에 함께 갔던 몬트레이의 해양생물보호구역이 너무 부럽다 했다.

 

나는 한국이 하두 미국을 따라하는 터라, 한국에도 해양생물보호구역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예 꿈도 못 꾼단다. 모두 고기를 잡아 먹을 줄만 알았지, 보호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산단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해양생물보호구역을 한국에 설치하는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으로 올 사랑>은 정말 따뜻한 책이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는 이 디스토피아시대에, 인간성의 파괴를 막고,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뭐니뭐니해도 '사랑'의 힘을 다시 회복하는 수밖에는 없다. 요즘은 '사랑'이라는 개념도 너무 사사화되고 개인화되어서 '공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원래 사랑의 개념은 사적인 개념이 아니라 공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좀 더 사랑을 파고 들어가면, 사랑은 신적 개념이다. 모든 생명은 신의 사랑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근본적으로 공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고 나면, 현재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을 돌아보며 마음의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 때문에 쓰레기 하나를 버리더라도, 음식을 먹더라도, 일상 속에서 그 마음의 불편함을 덜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변화는 바로 그러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불편함은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생명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죽음이 난무하는 이 디스토피아 시대에 아직도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자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간절히(강력히 보다 강력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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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