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세상 불의에 대한 항쟁의 시작이다.” 칼 바르트가 한 말입니다. 기도의 동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습니다. 몸 동작 중 가장 보잘것없는 축에 속합니다. 두 손을 모으는 것만큼 간단한 동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담고 있는 능력은 우주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늘 이렇게 발휘됩니다. 십자가 죽음도 세상 만물 중 가장 보잘것없고 추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일어난 일은 우주적 구원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매일 겪는 일이 세상의 불의입니다. 의롭지 못한 세상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습니다. 세상 불의는 골리앗처럼 너무나 힘 세보이고 커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앞에서 그저 한숨과 한탄만 흘러나올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위해 세상 불의와 싸우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 불의에 대한 심판이요 최후 승리입니다.

가수 송창식씨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삶의 규칙들이 이상하게 맘에 안 든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과 다르게 살 뿐이다.” 참 기인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이의를 가지고 살아가는지요? 세상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속편 하다고 생각해서 세상이 요구하는 삶의 조건을 모두 갖추려고 밤낮으로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의 있습니다!”를 당당하게 외치면서 부당하고 불의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불편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불의한 세상을 등지고 온갖 불편과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세상을 향해 등지고 살아간다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발맞추어 살아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 세상의 불의를 감지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행동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의 있는 삶, 부당한 삶,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항쟁하는 첫 걸음은 두 손을 모으는 것입니다. 기도는 세상 불의에 대한 항쟁입니다. 기도는 세상 불의를 바로 잡아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세상 불의에 이의 있습니까? 두 손 모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세상 불의를 바로잡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실 겁니다. 이 소망 안에서 우리는 두 손 모으는 일을 끊임 없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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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