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

 

크리스틴 헬머는 자신의 저서 <교리의 종말> 1장에서 북미에서의 신학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교단 신학교는 전례 없는 재정 압박을 겪으며, 교회를 섬길 다음 세대 종교 지도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킬지 고심하고 있다. 전임 사역자라는 전통적인 모델은 갈수록 불가능해 보인다. 이로 인해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일하며 살 목사를 교육하는 창조적이지만 또한 벅찬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게 된다. 신학교 건물과 떨어져서 열리는 온라인 과정, 집중 강좌, 주말반이 미래의 추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미래는 언제나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들로 흐르리라고 보는 확신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정당하지만 말이다). 성직자들이 사역으로 얻은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를 예견하며, 전문적인 훈련과 대안적인 직업 준비 모두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교육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ㅡ 사례비를 두고 교구회(vestry)와 계속 싸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투쟁만 생각해 보더라도 ㅡ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영구적 위기의 맥락에서는 특별히 절실한 문제이다"(29-30쪽).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심화된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삶을 위기로 몰고갔다. 1997년 한국이 겪은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한국의 경제체제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바뀐 뒤, 한국사회는 '헬조선'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의 삶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종교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기후위기, 그리고 영적 빈곤 상태 등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사회적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당연히, 현재 교회 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 문제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어떻게 인간의 삶(공동체)을 무너뜨렸는지를 알려면, 재독 한인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만약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거나 이러한 목회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교단이나 교회, 또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와 소통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교회 환경도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따라 부익부빈익빈, 즉 경제적 불평등 상황이 반영되고 있다. 대형교회는 계속 부흥할 것이고, 나머지 교회는 점점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는 마치 대형백화점이나 대형마트만 살아남고 동네상점들이 문을 닫는 것과 같다. 아마존 공룡 때문에 지역상권이 죽는 것과 같다. 이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인데, 무엇보다 지역상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지역의 특수한 문화가 파괴된다는 뜻이고, 그만큼 생명의 다양성이 축소된다는 뜻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한 대형교회가 획일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상품이 아니다. 신앙은 생명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성을 띌 수밖에 없고, 신앙의 고백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합창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이 획일화될 때, 그것은 정치가 획일화 되어 전체주의를 낳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신앙 생태계는 다양하고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이 끊임없이 재탄생하며 세대와 세대에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다양한 지역과 현장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맞선 목회적 전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목회 형태이다. 위에서 크리스틴 헬머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것을 위해서 "전문적인 훈련과 대안적인 직업 준비 모두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교육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는 생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현재의 신학생, 또는 목회자가 다른 분야의 학문을 공부하거나 또는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넘어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신학공부를 해서 목회자가 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는 전자가 우세하다. 현재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이나 또는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경제적인 필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카페를 운영하거나 여타 다른 스몰비즈니스를 겸하여 하는 형태의 목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발전하면, 완전히 다른 개념의 목회가 형성될 것인데, 신학교를 간 사람들이 신학 공부를 해서 목회자가 되어 스몰 비즈니스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들이 후에 신학공부를 해서 목회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다.

 

내가 공부한 에모리대학교에서는 이미 오래전 부터, 내가 그곳에서 공부한 2000년대 초반부터, 전문대학원들(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비즈니스스쿨, 신학전문대학원)끼리 교차 지원과 학점공유를 실행했다. 일례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이 신학전문대학원(Candler School of Theology)의 과목을 들으며 일정과목을 이수하면,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장과 신학전문대학원 졸업장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신학교가 이제 '신학'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자신들만의 영역에 갇혀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에서 '신학 또는 교회'는 살아남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미 위에서 지적했듯이, 전통적인 '전임사역자(담임목사)' 모델로는 목회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자립교회'는 아직 '자립교회'가 되지 못했고, 언젠가는 '자립교회'가 될 거라는 소망 안에서 그들을 '비전교회'라고 부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자립교회'와 '미자립교회'의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종교 자체가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교는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이 구조조정은 커리큘럼의 변화를 넘어서 신학생을 키워내는 방식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신학교는 신학교 담을 넘어 일반대학교들과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신학생을 일반대학교에 보내 교육 받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일반대학교 학생들을 적극 유치해 신학교육을 받아 그들이 자신들의 직업 바탕 위에 목회를 구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신학교는 더욱더 대학원 중심의 교육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감리교회는 그런 면에서 다른 교단에 비해 뒤처져 있다. 감리교회는 아직까지 대학원 중심의 신학교육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중심의 신학교육을 펼쳐 가되, 다른 일반대학교의 전문대학원들과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그들과 학사교류, 학점교류 등의 공유를 통해서 신학생이 다른 학문을 공부하여 경제적인 문제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넘어 다른 학문을 하는 학생들이 신학교육을 받게 함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기반 위에 목회를 구상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는 전통적 목회에 대한 일탈이 전혀 아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신학교나 교회 또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이중직 또는 사회적 목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듬고 해결하려고 하는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목회적 전략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서도 아직도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그 복음으로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부름 받아 나선 이들'의 목회가 '이중직 목회 또는 사회적 목회'를 통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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