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0. 12. 27. 15:44

2010 12 26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2:10-18

제목: 인간의 굴레와 그리스도의 구원

 

어느덧 2010년도가 다 지나고 마지막 주일을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선한 싸움을 함께 싸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한 해를 이렇게 보낼 때마다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을 많이 느낍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은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고,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한 해가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뉴스를 보니까, 즐거워야 할 성탄절기가 각종 사고로 얼룩이 졌다고 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성탄절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네 개의 촛불을 켰습니다. 희망, 평화, 기쁨, 사랑의 촛불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성탄절 전야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의 촛불을 켰습니다. 그 촛불을 켜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것들, 희망, 평화, 기쁨, 사랑을 가져다 주셨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그런 소식이 아니라, 각종 사건 사고 소식과 더불어 여전히 희망 없고, 평화 없고, 기쁨 없고, 사랑이 없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크리스마스 자체가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마음이 기쁜 것 같고, 분위기를 살려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추리도 하고 선물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해서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마음이 이전보다 더 허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성탄절을 복음으로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복음을 온 몸으로, 온 삶으로 받은 사람들은 그 기쁨이 날로 자라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격적으로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받은 사람에게는 그 기쁨이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은 심리학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심리적으로 이용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쉽게 휘둘립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깨어 있던 선지자들도 성경에서 이 점을 계속해서 지적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든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합니다. 아닌 것을 자꾸 심리적으로 그렇게 믿으라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예레미야 선지자와 대립했던 하나냐 선지자는 철저하게 남유다 백성의 심리를 이용해서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말씀을 전했는데 비해, 하나냐는 절대로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말씀을 전했는데 비해,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서 저들을 구원해 줄거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하나냐의 예언이 더 좋아 보입니다. 누가 항복하고 정복당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와 달랐습니다. 외롭게 힘겨운 싸움을 했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이토록 연약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판단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쉽게 병들고, 결국에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육체는 모두 그렇게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심리적 장치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서 기분에 따라 살아갑니다. 요즘 우리가 맞는 성탄절도 거기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성탄절을 보내고, 이제 2010년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여러분과 심리적인 복음이 아닌, 심리적인 신앙이 아닌,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참 복음, 참 신앙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복음의 핵심 개념인 성육신대속적 고난에 대해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탄절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이 질문을 꼭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는가?”입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그냥 한 말씀만 하시면 되지, 뭐 하러 번거롭게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 사실을 전하면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간의 실존을 이야기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의 실존은 혈과 육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많은 한계에 부딪히면서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혈과 육에 속해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씌워진 굴레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굴레가 인간의 궁극적인 약점이고, 두려움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15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존재라고 말입니다.

 

마귀는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됩니다. 죽음의 세력으로 인간을 넘어지게 합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끊임 없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헤롯 대왕을 통해서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죽음으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요셉에게 피신하라고 알려주었고, 그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들여다 보면, 예수님의 삶은 죽음의 세력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종 질병과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고쳐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그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마귀는 끊임 없이 예수님과 대립했습니다. 제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제사장들과 빌라도와 헤롯까지 한 통속이 되도록 공작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를 돌아서게 하고, 유다를 꾀여 음모를 꾸미게 해서 예수님을 결국 죽음에 몰아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귀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죽음의 권세로 결국 예수도 죽게 만들었다는 승리의 미소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군중들도 모두 그렇게 그냥 끝나는 줄 알고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잃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죽음의 세력으로 인간을 넘어지게 하는 마귀를 멸하시는 방법이, 바로 그 죽음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통쾌한 역설이고, 기막힌 역전입니다. 죽음과 죽음의 폭군을 이긴 방법이 죽음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조금 못한 존재가 되어 성육신 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혈과 육에 속한 인간이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을 자발적으로 받으셔서, 대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대속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죽음에 매여 종노릇 하던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혈과 육을 취하시고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혈과 육의 한계에 묶여 있는 인간을 도우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성육신과 대속적 고난을 체험하신 분이기 때문에 혈과 육의 한계로 시험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충분히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One of us, 되신 겁니다.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를 기쁘게 하고 흥분되게 하고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은 이 복음이지, 세상이 조작하는 심리적인 장치들이 아닙니다. 네온 사인이, 크리스마스 캐롤이,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이, 분주하고 활기찬 쇼핑몰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혈과 육에 속한우리 인간들처럼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처럼 인간의 굴레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뒤, 그 죽음의 권세, 사망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이 복음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끝났는데도,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질병과 고통과 죽음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통해 각종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삽니다. 뉴스를 통하지 않더라도,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내가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내 삶에 여전히 질병과 고통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 심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게 뭐야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잖아라면서 투덜거리지만, 복음을 인격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받아들인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내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질병과 맞서 싸웁니다. 이런 사람은 고통 가운데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합니다. 내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 하지 않고,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에 따라 신앙생활을 합니다. , 인간의 굴레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봅니다. 이게 보여야 합니다. 복음을 따라가면 이게 보입니다. 이게 보이시는 분은 복음을 잘 따라가고 계신 중이고, 이게 안 보이는 분은 좀 더 분발하셔야 합니다.

 

성탄절기를 보내면서, 한 해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굴레에 매여 질병과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면서 살고 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이, 성육신과 대속적 고난의 복음이 우리들의 희망이요, 평화, 기쁨이요, 사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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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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