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0. 1. 17. 03:36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골로새서 1:1-14)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다. 에바브라(Epaphras)가 세운 교회다. 에바브라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 사역할 때 문하생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참 대단한 거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조지아에서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다. 교회를 개척한 뒤, 우리 교회에서 사역한 수련목들도 대개 다 개척을 했다. 한 수련목이 우리 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교회를 개척할 당시, 여러 교회에 후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써준 추천서에 나는 개척의 필요성을 절절히 서술한 일이 있다. 개척하는 일은 연못에 계속하여 맑은 물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는 논지였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교회 개척은 교회라는 물이 썩지 않도록 계속하여 맑은 물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난 연말에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며, 우리 교회의 창립일을 2017 430일로 정한 것도 사실 그런 원리다.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연못에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회는 늘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 사역을 한 후배 목회자들이나, 주변의 후배 목회자들에게 늘 개척을 권면한다. 개척하여 연못과 같은 교회의 맑은 물이 되라고 말한다. 물론, 대개 맑은 물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개척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후배들을 내가 나무랄 자격은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든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장하면 나는 교회 개척하는 것을 돕고 싶다. (물론 내가 또 개척을 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니까.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나도 때론 힘들다.)


복음을 듣고, 에바브라와 같은 열정이 생겨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울이 에바브라에 대하여 칭찬하면서 말한 것처럼, 성령 안에서 신실한 일꾼이 되어 전도하고 선교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일인가. 우리 모두 그러한 믿음이 더욱 성장하도록 간구하고 기도하면 좋겠다.

 

골로새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이다. 복음주의적인 주석서들은 대개 이렇게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우월성’. 그러면서 골로새서는 잘못된 가르침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잘못된 가르침은 이성주의, 율법주의, 금욕주의이다. 이게 아주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잘못 이해하면, 우리에게 이성, 율법, 금욕은 다 필요 없고, 그리스도의 우월성만 중요하다고 하는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치 기독교는 반이성주의, 반율법주의, 반금욕주의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필연적으로 반과학주의와 탈윤리주의를 불러온다. 예수 그리스도만 중요하고, 다른 것을 다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은혜로운 것 같지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반과학주의와 탈윤리주의는 세상을 등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반과학주의와 탈윤리주의에 사로 잡히면, 세상과의 소통이 멀어지고,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며, 자기 신앙 안에 갇혀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정말 답 없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은 그리스도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이성의 완성이시고, 율법의 완성이시고, 금욕의 완성이시다. , 이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고, 율법도 마찬가지고, 금욕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이성과 율법과 금욕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 있고,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고 근본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은 아주 중요한 기도를 담고 있다. 9절부터 12절이 기도이다.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 교회의 지체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9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아는 것에피그노신이라는 헬라어를 쓴다. 이것은 의도적인 표현이다. 골로새 교회가 맞닥뜨린 도전은 영지주의(그노시스즘)’에 대한 것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들이 주창하는 지식(그노시스)’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자신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쭐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은 그 누구도 우쭐해질 수 없다. 모든 지식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고 있고, 누구든지 어떤 지식에라도 접속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듯 말하는 집단은사이비. 대개 이단이나 저급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푸는 성경의 내용이 대단히 비밀스러운 것인데 그 비밀을 특별히 노출하고 있는 양 말한다. 지식의 독점을 주장하는 사람은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진리는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고 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진리는 자신을 숨긴다. 그러나, 진리를 어린 아이와 같이 사모하고 누구와도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진리를 모습을 드러낸다.

 

바울은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며!”(9, 10). “아는 지식”, (knowledge)”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에서 시작된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말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참된 이치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이렇게 들리다. “아침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저녁에 순교해도 좋다!”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뜻 알게 된바울의 동역자들 중에, 위에서 이야기 한 에바브라 이외, 에바브로디도와 디도가 있다. 에바브라, 에바브로디도, 디도는 한결같이 바울처럼 순교하기를 결심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뛰어 들었다. 에바브로디도는 옥에 갇힌 바울을 돌보며 빌립보 교회와 가교 역할을 했다. 그가 왜 그런 수고로운 일을 했을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도는 그당시 목회하기 가장 힘들다는 크레타 섬에 가서 목회를 했다. 크레타 섬 사람들은 디도서에 나오듯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고, 마음이 사악했고, 행동이 게을렀다.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1:12-13). 그런데, 디도는 왜 그런 곳에 가서 기꺼이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했을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바브라도 마찬가지다. 그가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듣고, 고향인 골로새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주변 도시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교회를 개척한 이유가 무엇인가? 누구는 교회 하나를 세우기도 힘든데, 세 군데나 교회를 개척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아침에 하나님의 뜻을 알면, 저녁에 순교해도 좋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게으른 종으로 사는가?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우리 교회를 향해 드리는 기도로 들리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도 그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져서, ‘아침에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저녁에 순교해도 좋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들이 모인,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 얼른 부흥해서, 교회 개척 많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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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