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2020. 8. 25. 11:36

[시론] 하재연의 시 이해’ – Under-standing

 

당신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당신의 밑에 서 있기로 합니다.

 

위가 깜깜합니다만,

 

위로부터 무엇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만,

 

신들의 이유 없는 장난처럼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은 또한

나의 아래 있었던 것

 

ㅡ 하재연의 시 '이해'의 한 부분, 시집 <우주적인 안녕>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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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상대방의 밑에 서 있는 것, 이것만 잘해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이라는 단어는 참 겸손한 단어다. 그러나 인간은 ''에 서고 싶어하지 않고, ''에 있으려 한다. 밑에 서 있으면 '이해'를 선물로 받지만, ''에 서 있으면 '판단'을 재앙으로 받는다. 밑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판단한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밑에 있던 사람이 위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공부이고 신앙인가? 그렇다면 공부 안하고, 신앙을 갖지 않는 게 낫다. 공부란, 신앙이란, 밑으로 내려오기 위한 수단이다.

 

우주의 밑으로, 만물의 밑으로, 인간의 밑으로, 나 자신 밑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이해'를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라는 선물 없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우리는 '(God)'이 하늘에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신은 ''에 있다. 하늘은 ''가 아니라 ''이다. 기독교 신앙이 전복적인 이유는 하늘은 ''가 아니라 ''이라는 것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타락, 또는 세속화는 다른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신앙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서 '이해'를 선물로 받으려는 생각을 접고, 공부와 신앙을 통해 위로 올라가 '판단'을 선물로 받으려는 욕심을 갖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얼마나 타락한, 세속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남을 판단하는 자는 다음의 말씀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마땅히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2:1-2 /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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