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중요성]

 

텍스트가 중요한 것을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도 자주 간과한다. 이것은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두 손에 쥐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발생하는 가장 빈번한 실수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독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전일수록 더 그렇다.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에 대한 독법은 정말 쉽지 않다. 해석은 텍스트 자체가 지닌 무게와 의미를 가늠해 보는 일 뿐 아니라 그 무게와 의미를 우리 시대에서 다시 재어 보는 일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어떻게 읽어냈으냐는 우리의 실제 삶 속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독법에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가령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십중팔구 다음과 같이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세상 나 혼자 사는 거야! 즉, 이것을 인생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로,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니 누군가를 의지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독법 아래서 인생은 원래 외로운 거라고 자위하면서 누구도 나를 도와줄 이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서 독하게 마음 먹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형편 없는 독법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인생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장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고정된 도(道)가 없으니 우리가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게 좋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고 한다. 그들이 정해준 길,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기 보다, 자기 자신이 길을 개척해서 걸어가는 삶,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정신을 보여준다.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거야'와는 다른 결을 가진 말이라는 뜻이다. 인생은 외로운 게 아니라 자유로운 거다. 인생이 외로운 이유는 자유롭지 못해서이다.

 

이와 같이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그 텍스트를 읽어내는 독법, 해석이 더 중요한 법이다. 해석의 잘못은 삶의 잘못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성경 독법은 QT로 대표되는 수준에서 맴돌 뿐이다. QT 수준의 독법은 아전인수의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자기 중심적 읽기, 기복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욕망의 표현 밖에는 안 된다.

 

기독교의 역사는 '성경 해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형태, 삶의 형태는 달라진다. 성경을 잘 해석하기 위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성경 해석에 달려들었고, 그 해석의 역사는 고스란히 기독교 역사로 남아 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성경을 해석해온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해석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역사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성경 해석의 역사, 즉 기독교 역사를 무시하고 그냥 성경으로 들어가 성경을 읽어내는 일은 복음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무모한 신앙인일 뿐이다. 이는 수영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바다에 뛰어드는 일과 같다. 바닷물만 마시다 나올 수 있고, 바다에 빠져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일은 언제나 준비와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역사와 소통하며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그냥 성경을 입으로 소비해 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시대 가장 무용한 무당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그냥 믿음으로 받으라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은 없다. 은혜로운 말 같으나 사람들을 인간으로 만들지 못하고 짐승으로 만들고 노예로 만드는 것과 같다. 주체적이지 못한 것은 순종이 아니라 광신일 뿐이다.

 

기독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역사와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소통하며 해석의 작업을 하든지, 아니면, 입을 다물든지 해야 할 텐데, 입을 여는 일은 쉽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으니,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말들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그야말로 말씀의 공중부양 시대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