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0. 1. 14. 08:15

You’re in good hands

(잠언 1:20-33)

 

세상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 많은 일들에 우리가 다 적절하게 대처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들 때문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우리 보다 큰 존재인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 우리의 삶을 평안케 하고자 함이다.

 

기복신앙이라는 것이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 모든 종교에는 기복(복을 간구함)’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이 문제지, 만약 우리의 신앙에 기복의 요소가 없으면, 누가 종교에 매력을 느끼겠는가.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은 유한하지만,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존재,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야말로 지혜롭게대처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그러한 지혜를 얻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육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특별히 잠언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깊이 가르쳐 준다. 나는 잠언서 읽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마침 잠언서는 31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한 달에 한 번씩 통독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문서/지혜서’(시편, 잠언, 전도서)는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았을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묵상하면 신비스럽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이다.

 

본문을 보라. 우리를 부르는 것이 있다. 우리가 평소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시집 가야하고 장가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이 많아서’,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우리를 매일 부르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우리를 부른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20).

 

이렇게 불러 대는 데도, 우리는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다. 지혜는 우리를 불러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지를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를 멸시한다. 귀를 닫고 듣지 않는다. 그러다, 재앙을 만나면 울고, 슬퍼한다. 그러나, 반대로 지혜로운 자는 지혜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환란의 때에 구원을 받는다.

 

이게, 당연한 이야기 같고,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리석은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지혜로운 줄 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심리학적 용어로 메타인지가 부족하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알지 못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저 너희가(어리석은 사람)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30).

 

내가 이런 말을 강조해서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예언과 환상을 주셨고,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두려움 없이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언과 환상을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 우리 교회에 주신 예언과 환상의 말씀은 어디에서 왔는가?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고 계신가? 에스겔서 16장과 47장의 말씀이다.

 

에스겔서 16장은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피투성이 같은 연약한 이스라엘을 씻기시고 입히셔서, 왕후의 지위에 올리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에스겔서 47장은 성전에서 물이 나와 강을 이루고 그 강 좌우편에 심긴 나무들이 다음 말씀처럼 되는 환상이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2).

 

지난 2019128일을 일컬어 코스피 굴욕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날 애플(사과주식회사/우리동네기업)의 주식 시가총액은 1,402조가 되었고, 그 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주가 시가총액 1,384조를 넘어섰다. 애플이 주식의 시가총액이 높은 이유가 뭔가? 미래에 대한 성장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식 투자를 할 때, 이렇게 미래에 대한 성장 기대치를 말해주는 시가총액을 보고 투자를 한다.

 

그런데, 교회는 무엇을 보고 미래 대한 성장 기대치를 가질 수 있을까? BTS의 팬덤 Army1억명이 넘는다. 여기 1억명은 BTS를 위해서 뭔가 하나라도 구매를 통해서 기여한 사람을 말한다. 그들이 BTS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보고 교회를 정해서 다니며 그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투자하는가? 규모나 시설 등 이런 겉으로 드러나는 시가 총액이 아니라, 그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비전)’의 말씀이다.

 

여러분은 내가 바보 같은가? 어떤 바보가 망해가는 교회에 오는가? 여러분은 바보인가? 어떤 바보가 망해가는 교회를 지키는가? 내가 우리교회에 오게 된 것, ‘아 이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나의 인생을 헌신해야겠구나!’라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외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의 말씀 때문이다.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없는 곳에 자신의 돈도 아니고, 인생을 투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가?

 

3대째 목회자로서, 그리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일에 인생을 건 목회자로서 내가 평소에, 그리고 평생 연마하는 기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술이다. 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신비를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본문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시끄러운 길목에서, 성문 어귀에서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훈련 받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이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

 

<두 교황>이라는 영화가 최근 Netflix에서 상영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꼭 보시라! 정말 좋은 영화다!) 이 영화는 가톨릭의 전현직 교황 두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핵심은 고해성사이다. 두 교황이 서로 고해성사 하는 가운데,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전직 교황(베네딕투스 16/조세프 라칭거/265)은 교황직을 내려 놓는 자리로, 사직하고 싶었던 추기경(프란치스코/호르헤 베르고글리오/266)은 교황직에 오르는 자리로, 서로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은 서로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전직 교황 베네딕투스 16세는 자신이 교황직을 내려 놓으려는 가장 큰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요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는 평생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았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다. 요세프 라칭거는 원래 엄청 유명한 신학자이다. 여성신학자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라는 분이 있다. 사실 이분 보다 더 유명한 분이 그의 남편 프란시스 피오렌자이다. 프란시스 피오렌자가 하버드 대학의 부름을 받았을 때, 본인의 부인을 함께 임용하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했다. 물론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도 엄청 뛰어난 학자였기에 하버드에서 프란시스 피오렌자의 요구를 승락했지만, 프란시스 피오렌자는 그만큼 뛰어난 학자다. 프란시스 피오렌자의 스승이 누구냐면, 철학자 하버마스와 요세프 라칭거이다교황 베네딕투스 16세는 결국 베르고글리오 추기경과 대화하며 고해성사하는 가운데,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비전)의 말씀이 없는 곳에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다. 정말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주변여건사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의 말씀을 고려한다. 그게 없으면 발을 들여 놓지 않고, 그게 있으면 지옥이라도 간다! 루터도 이런 말을 했다. “지옥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나는 지옥에 가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의 말씀, 에스겔서 16장과 47장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라. 진지하게,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라. 마리아가 어린 예수의 말과 행동을 마음에 둔것처럼, 그렇게 내가 간곡하게 드리는 말씀을 마음에 두시라.

 

요즘에 부모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아이들하고 매일 같이 스마트폰 때문에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그 문제를 진지하게 풀고 있는 책 <포노 사피엔스 Phono Sapiens>의 저자 최재붕 교수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자신의 장기organ’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무작정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할까? 최재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들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연 경험이 없고, 그저 스마트폰을 통해서 게임이나 하고 유튜브나 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들 자신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그런 비효율적 경험 밖에 못하니, 아이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목회자로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부모 세대는 아이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본을 보이지 못할까? 교회에서 싸움 박질하고, 교회가 갈라지고 깨지고, 시대에 뒤처진 복음 이야기만 듣고, 뭔가 혁신적이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는 신비로운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하나님의 예언과 환상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그러한 경험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하나님의 예언과 환상이 주어진 우리 교회에 그냥 여러분의 인생을 투자하면 된다. 그것을 교회 용어로 교제(fellowship)’라고 한다. 아주 쉽게 말해,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처럼, 생수가 강단으로부터 흘러 나가고 있다. 이것은 내가 우리 교회 와서 드린 첫 새벽기도회 때 본 것이다. 나는 그런 환상 보는 것을 추구하거나 갈망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어떻게 하는가. 본 것을 봤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증언할 뿐이다. 그것이 강을 이루고 있다. 그 강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는 것이 에스겔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 잎사귀가 풍성하고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그 잎사귀가 약재로 쓰임을 받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사는 길이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살며 우물을 팠는데, 팔 때마다 물이 나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막에서 우물을 판다고 물이 나오나? 그런데, 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하나님이 물을 주셨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이삭은 그렇게 하나님께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다. 우리교회도 하나님께서 에스겔서 16장과 47장의 말씀을 통해서 복을 내리셨다. 강단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보여야 한다. 지금 여러분의 눈으로 그게 안 보일지라도, 말씀을 믿는 자는 그것을 보는 자와 같다.

 

교회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라. 여러분을 심으라. 여러분을 귀찮게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복을 주고 싶어서 그렇다. 이 절절한 심정을 보여줄 수 있다며 좋겠다. 나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이야기했는데도 안 들리는 것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러분들의 삶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를 깨달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다. You’re in good hands! You’re in God’s hands and his servant’s hands. God bless you!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마 - 순종  (0) 2020.01.23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0) 2020.01.17
기억하고 기대하라  (0) 2020.01.06
흔들리며 성장하는 믿음  (0) 2020.01.04
세상의 모든 라헬을 위한 기도  (0) 2020.01.04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