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3. 2. 00:44

시편 14, 53

어리석은 자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있다하는 자들을 어리석다 하고, ‘하나님이 있다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들을 어리석다 한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있다, 없다는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생각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각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들이 어리석은 거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한다. 이들의 삶 속에는 어리석음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없다하니 그들의 마음이 부패하게 되고, 마음이 부패했으니 그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가증스럽고 악한 일들뿐이다. 당연한 결과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삶 속에 없으니, 생명 냄새 나는 일들을 행할 능력이 그들에게는 없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명이 떠난 송장이 내뿜는 송장 썩는 냄새 나는 일들 밖에 없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떡 먹듯이먹어버린다. 하나님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 밖에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복음서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가난한 자들은 삶의 토대가 없는 이들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삶의 토대가 없는 이들은 기댈 곳이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삶의 토대를 하나님께 두지 않고 스스로 삶의 토대를 쌓으려 하기 때문에 늘 분주하다. 그러나 그들이 쌓은 삶의 토대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거리가 먼, 유한하고 썩어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생명이 아닌 것에 기대어 사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생명이 없는 곳에는 평안도 없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평안도 없다. 생명의 창조자이시고 생명자체이신 하나님 만이 평안을 주신다.

 

시인은 하나님 만의 고유한 구원 방식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께 기대어 사는 가난한 자들을 못살게 굴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도리어 어리석은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은 그렇게 온다. 우리의 상식 수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방식으로 온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대어 사는 가난한 자들이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하나님이 없다하는 어리석은 자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시는하나님을 인정할 것인가에 있을 뿐이다.

(시편 14편과 53편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