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1. 2. 04:03

그리스도의 삶에 나를 던지다


(
, Blessing)”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에게 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고 하면 우선 복권같은 개념을 들어 설명할 것이다. 옛 풍습을 조금 아는 사람 같으면 새해 첫날에 세배 할 때 하는 인사(“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어른 들이 해주는 덕담(“복 많이 받거라!”)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어느 것이든 그 근본은 물질적 풍요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에게 은 곧 과 같다.

 

복에 대해 이러한 개념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시편 1편에서 말하고 있는 은 매우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첫 음절이 으로 시작하는 것에 반색하다가도 첫 번째 구절이 다 끝나가기도 전에 얼굴이 굳어질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에 대해서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 선포되기 때문이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등의 단어들은 마음을 매우 심란케 한다. 현대인들은 이 단어들을 듣기 싫어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이들과의 관계를 따지지 않고는 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사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걷다(따르다)”, “서 있다”, 그리고 앉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로 대표되는 경건치 못한 자들과는 그 어떠한 관계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과는 함께 길을 걷지도 말고, 그들과 함께 서서 대화도 나누지 말아야 할뿐더러, 그들과는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복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절은 복 있는 사람이 함께 걷고, 서 있고, 앉아야 할 것을 제시해 준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걷고, 서고, 앉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복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면서 묵상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좁은 의미로 보면 토라(모세 5)을 의미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구체적인 의미로 여호와의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이다( 5:17,18).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라는 뜻은 일상을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내 삶 안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그리스도의 삶에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3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삶이다. 시냇가에 나무를 심는 것이지, 나무가 심겨진 곳으로 시냇물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만사형통을 꿈꾸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전까지 그 소망은 헛된 욕심에 불과하다.

 

복이란 무엇인가? 복 있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던진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 이 손에 잡히는가?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