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구멍을 메우는 일]

 

추운 겨울을 생각해 보죠. 그리고 집 한 채를 생각해 보고요. 칼바람이 부는 겨울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집 한 채. 그곳에 ''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라는 게 사방으로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습니다. 옛날 허름한 초가집이라서 그럴까요. 문풍지를 대서 겨우겨우 막아 놓은 구멍들이 막아도 막아도 소용없는 듯, 구멍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추위를 막아보고자, 온 힘을 다해서 그 구멍을 막아봅니다. 그런데, 구멍 하나를 막으면 다른 곳에 구멍이 또 뚫려서, 새로 생긴 구멍을 막느라 정신이 없죠. 추운 겨울 밤을 이겨내고자 열심히 구멍을 막아 댑니다. 열심히 막다 보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긴 합니다. 그런데, 정말 봄이 올까요?

 

구멍은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삶에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죽음의 그림자들을 하나씩 지워 나갑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모두 죽음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것이지요. 아무리 막아도 들어오는 칼바람처럼 죽음은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위협합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직장을 갖는 것도, 스포츠를 하는 것도, 낚시를 하는 것도, 축구를 차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종교를 갖는 것도, 그리고 미쳐버리는 것도 모두 죽음에 맞선 행위들입니다. 죽음의 구멍을 메우는 행위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구멍을 메우는 행위를 열심히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늘 불안하고 불만족스럽죠.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죽음의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모두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항상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 사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끝은 '실패'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실존이지요. 정말 허무하기 짝이 없죠.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실패가 끝이니까 실패를 받아들이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야 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생에 대하여 물었던 수많은 철학자들과 시인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묻고 있는 철학자들과 시인들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오롯이 존재하는 '죽음'을 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생산해 내고 있는 구멍들을 최선을 다해 메우는 것이 죽음의 허무를 이겨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구멍이 너무 크게 뚫려 있어서 가뜩이나 추운 겨울, 황소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생명이 고통당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춥다고 아우성입니다. 구멍이 클수록 그 구멍을 막기 위해서는 '협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백신회사들만 그 구멍을 막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 놓을 수 있는 구멍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이 큰 구멍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협동'을 하고 있습니까? 구멍이 크게 뚫려 칼바람이 세차게 밀려들어올수록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그 구멍을 막아 내기 위하여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버텨왔습니다. 삶을 위협하는 수많은 죽음의 구멍들을 잘 막아내며 살아낸 우리들이니, 이번에도 잘 막아낼 것입니다.

 

너무 춥지 않기를, 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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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