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가능한가]

 

나는 어제 교회 앞에 새로 생긴 일본 그로서리 스토어(Osaka Grocery Store)에 가서 식료품을 샀다. 오늘은 교회 앞에 있는, 일본 그로서리 스토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새로운 장소에서 오픈한 중국 마켓(Ranch 99)에 가서 장을 봐 왔다.

 

원래는 15불 거리에 있는 한국마켓(H-Mart)로 장을 보러 다니지만, 교회 앞에 있는 일본 마켓이나 중국 마켓에 가도 내가 평소에 먹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 마켓에 가서 장을 봐도 별 문제가 없다.

 

한 가지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일본 마켓에서는 한국 제품을 팔지 않는데, 중국 마켓에는 한국 제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중국이 일본보다는 친한국 성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다. 한국 마켓을 가면 한국말 하는 캐쉬어 아주머니가 일하고, 중국 마켓에 가면 중국말 하는 캐위어 아주머니가 일한다. 일본 마켓에서는 계산하고 나갈 때 당연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인사를 건넨다.

 

한국 마켓은 한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중국 마켓은 중국인들에게, 일본 마켓은 일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인구가 많은 이곳 배이 지역(Bay Area)은 어느 마켓이든 장사가 잘 된다. 그리고 한국 마켓이라고 한국 사람만 가는 게 아니고, 여러 민족들이 한국 마켓을 이용한다. 중국 마켓, 일본 마켓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함께 어우러져 산다.

 

아우 김성래 목사 교회(Aldersgate UMC)는 일본인 교회(Japanese American Church)다. 그 교회가 정말 특이한 것은, 교회는 일본인 교회인데 담임목사는 한국인이고, 평일에는 중국인들이 데이캐어센터를 교회 건물에서 운영한다. 한 공간 안에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가 공존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아주 큰 괴로움을 겪었다. 진주만 폭격 후에 미국 정부는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Manzanar Concentration Camps라는 곳에 감금했다.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캘리포니아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인들을 핍박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때의 충격으로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아메리카나이즈 하는데 힘을 쏟았다. 일본 본토와 거리를 둔 것이다.

 

2차대전 당시 한국인들, 그리고 중국인들만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다.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가 사죄해야 해아할 대상은 한국인,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민족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거주하던 일본인들도 해당된다. 악한 일이 발생하면 이렇게 구석구석 아픈 일이 발생하는 법이다.

 

동일한 역사로부터 당한 아픔의 색깔은 다르지만 '아픔'이라는 공통 분모를 지녀서 그런 것일까, 캘리포니아의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지 않다. 중국인들도 미국에 이주하여 노동자로서 고생을 너무도 많이 해서 아픔이 많은 민족이다. 이렇듯, 아픔은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의 띠인 것 같다.

 

평화는 가능하다. 서로가 지닌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평화는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나는 한,중,일 민족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경험하고 있고, 나도 그 일원으로서 평화에 동참하여 산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민족주의의 색채는 옅어지는 것 같고, 인류애가 짙어지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하여 평화가 묘연한 요즘, 평화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근대의 민족주의 국가 개념에서 벗어나 탈근대의 삶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사느라 고통 가운데 있고, 아픔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사순절을 하루 앞두고, 삼일절에, 평화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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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