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2019. 8. 9. 08:41

포춘쿠키의 시론

ㅡ 심보선의 시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를 읽고

 

10년 간 매일 같이 포춘쿠키를 이용하던 덴 브라운(Then Brown)은 어느 날 포춘쿠키에서 이상한 글귀를 발견한다. 그는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나오는 차 한 잔을 마시며 포춘쿠키를 뜯어 그 안에 있는 글귀를 읽어보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한 그날 읽은 포춘쿠키의 문구는 평상시와 달랐다.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 Hope is the most tragic part of your soul.” 그는 너무도 이상하여 이 글귀의 증거사진과 함께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포춘쿠키를 만드는 AFOOO 회사에 편지를 쓴다.

 

우리는 보통 포춘쿠키의 글귀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포춘쿠키의 문구는 낙관적이다. 덴 브라운의 말을 빌리자면, 포춘쿠키의 글귀들은 적확한 상징과 레토릭, 긍정과 자유의 에너지, 원숙한 지혜와 유머로 낙관주의적 세계관을 생생히 구현한다. 그런데, 만약 포춘쿠키를 뜯으며 낙관적인 문구를 기대했는데, 그와는 달리 덴 브라운이 경험한 것처럼 거기에서 비관적인 문구를 읽게 되었다면, 우리도 덴 브라운과 똑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AFOOO 회사의 고객 관리 담당자에게 보냈던 덴 브라운의 편지에 대한 답장은 놀랍게도 그 회사의 CEO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폴 웡(Paul Wong)이 직접 보내왔다. 그는 덴 브라운에게 회사가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간략하게 들려준다. 그 역사를 아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에 직접 옮겨본다. “지금 고인이 되신 저의 아버지 소유 웡 Shao Yu Wong2차 세계대전 당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군수공장을 운영하였습니다. 전쟁 후 아버지의 사업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으니 군수공장은 당연히 주문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요. 아버지는 회사의 위기를 애국적인 이타심으로 극복하셨습니다. 바로 포춘쿠키를 통해서였죠. 아버지는 국민들이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게끔 돕는 영감을 작은 과자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아버지는 군수공장은 과자공장으로 전환했습니다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작은 위로의 미풍을 후식으로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포춘쿠키에는 대단한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후식으로 먹는 과자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문구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자신의 행운(fortune)을 헤아려보고자 한다. 그러나, 덴 브라운이 발견한 위의 글귀는 이러한 회사의 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덴 브라운은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회사의 CEO는 그의 직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CEO는 이렇게 말한다. “제 소견으로 귀하가 발견하신 포춘쿠키, 아니 불행의 과자(misfortune Cookie’는 누군가 악의적으로 유통 과정에 슬쩍 끼워 넣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진상 조사가 시작된다.

 

덴 브라운은 자신의 의혹에 대하여 신속하게 답변을 준 AFOOOCEO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서 덴 브라운은 그 글귀를 작성한 사람이 얼마나 무성의한 사람인지, 포춘쿠키의 철학을 추어올리며 이렇게 표현한다.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은 귀사의 비전을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귀사의 비전은 한 집안의 가풍을 넘어 세계 전체로 확장해나간 위대하고도 비밀스러운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덴 브라운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포춘쿠키의 글귀들은 누가 쓰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 덴 브라운은 AFOOO의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포춘쿠키의 글귀들은 1960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브라운 지(Brown Gee)라는 사람이 써왔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하여, 덴 브라운과 브라운 지는 역사적인편지 왕래를 시작하게 된다.

 

브라운 지는 덴 브라운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의 말투는 매우 퉁명스럽다. “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에게 뭘 알고 싶으신지요?” 덴 브라운은 브라운 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을 질문한다.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라는 글귀에 대한 귀하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덴 브라운은 포춘쿠키의 글귀들을 창작하는 브라운 지와 이렇게 편지 왕래하게 된 것에 대한 영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맺는다.

 

브라운 지의 답장이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브라운 지의 답장은 예상과는 달리 매우 공격적이다. 그 편지의 첫 문장은 이렇다. “영광? 평온한 일상? 존경을 담아? 당신이 나에게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입에 발린 말들을 지껄이는 거야?” 브라운 지는 왜 이렇게 감정을 폭발 시킨 것일까?

 

브라운 지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진실이 섬뜩하다. “반세기 동안 희망이니 용기니 느끼하기 짝이 없는 미사여구를 매일 세 개씩 매년 천 개씩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노동의 비애를 당신이 알기나 해?” 그가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평생 알지 못할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브라운 지는 지난 50년 동안 희망이나 용기를 생산해 내느라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만들어낸 포춘쿠키의 글귀들은 그가 허무에 취해 낄낄거릴 때마다 입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구취 아래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진실의 발설이다.

 

사실,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는 실수로 생산한 글귀가 아니라 브라운 지의 가장 깊은 마음이 담긴 글귀이다. 그는 행운을 혐오한다. 아니, 그는 불행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브라운 지는 왜 불행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불행은 차라리 적막에 가까워. 적막은 침묵이 아니야. 적막은 존재에 필요한 소리만 존재하는 상태야. 모든 존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어. 불행의 필연, 탄생과 죽음 사이를 직선으로 잇는 궤도에서 벗어난 모든 소리는 소음일 뿐이야. 침묵조차 소음일 뿐이야.”

 

삶에 대하여, 브라운 지는 단호하게 말한다. 삶은 불행하다. 그 불행한 삶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그는 투쟁한다. 그의 투쟁방식은 이렇다. “5만 개의 소음 속에 5백 개의 적막을 심어 넣기, 5백 개의 불행으로 5만 개의 행운을 교란하기.” 그런데, 반세기 동안의 그의 이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더 슬픈 일은 그의 투쟁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브라운 지는 덴 브라운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록 단 하나의 글귀에 대해서였지만 지난 50년 동안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독자요, 평자였어.”

 

이 일로, 희망과 행복만을 말해야 했던 브라운 지가 불행한 메시지를 말한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자, 브라운 지는 더 이상 포춘쿠키를 만드는 회사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모르게 회사를 떠났다. 그가 떠난 그의 책상 위에는 이러한 메모가 놓여 있었다. “난 매일매일 행복을 떠벌리느라 불행해졌소. 아니 애초에 불행했기에 매일매일 행복을 떠벌린 것인지도.”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불행한 삶 속에서 행복을 떠벌리는 게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이는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속시원하게 외치지 못하고, 어디 인적 드문 곳에 가서 애꿎은 나무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진실을 대면하지 못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세상을 속이며 사는가. 불행을 불행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애써 에둘러 행복을 말하며 희망을 꿈꾼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불행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진실을 말하고 싶다. <브라운이 브라운에게>의 시에 소개된 포춘쿠키 만드는 회사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포춘쿠키의 역사를 알게 되어 기뻤을 그 마음에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 때로 진실은 이렇게 가슴 아프고 허무한 법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