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9. 10. 2. 15:05

하품


손을 뻗쳐도 닿지 않는 광기가 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면 더 멀어지는 광기가 있다

 

어젯밤 꿈자리는 어땠어?

아내가 묻는다

나는 하품을 한다

꿈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졸립다

 

숲길을 좀 걷고 싶었다

거기엔 검푸른 이끼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고

낙엽은 구석에 몰린 채 바람과 맞서고 있으며

새들의 무관심한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같이 갈래?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하품을 한다

숲 얘기만 하면 아내는 졸립다

 

나는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손을 펴 손금을 보여준다

숲속의 길은 내 손금보다 단순해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돼

 

아내는 내 손금을 빤히 들여다 본다

거짓말 하지마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내 몸에 난 가장 단순한 길을 보여준 건데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아내의 눈을 쳐다본다

구멍 난 빛은 눈 속에서 떠날 기미가 없다

손을 다시 한 번 뻗어본다

손금 속에 있던 숲길이 미끄러져 나간다

 

하품 좀 그만해

아내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미끄러져 나가는 손금의 숲길 속에서

넘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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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