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예배
[전쟁과 예배]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많은 경우, 예배는 마음의 위로를 얻고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쉼의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예배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뜨거운 실재다. 예배는 낭만이 아니라 전쟁이다. 현실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저항의 자리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여자’로 비유된 교회가 ‘용’으로 상징되는 악의 세력과 맞서고 있다. 이 여자는 하늘의 별과 해와 달을 몸에 두른 영광스러운 존재지만, 동시에 산고에 시달리는 해산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고통 중에 진통하고, 박해 속에 울부짖는 교회의 모습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용’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궁극의 악한 세력을 상징하며, 하늘에서 쫓겨난 뒤 여자를 끝까지 괴롭힌다.
이 장면은 환상이 아니다. 소아시아의 초대교회들처럼 오늘의 교회도 여전히 악의 세력과 대면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삶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족과의 갈등, 교회 안의 분열, 사회의 부정의, 내면의 상처와 유혹들… 이 모든 것들이 용의 발톱이며 숨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답은 예배다.
요한계시록은 전쟁과 예배를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하늘에서는 미가엘이 용과 전쟁을 벌이고, 그 직후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를 찬양하는 예배가 울려 퍼진다. 이 예배는 단순한 찬양이 아니다. 이 예배는 제국의 언어를 뒤집는 저항의 노래다. '구원, 능력, 나라, 권세'—이 네 단어는 본래 로마 제국의 언어였다. 황제의 선전 문구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하나님과 어린양께 돌리며 제국을 무너뜨리는 반전의 노래로 바꾼다.
예배는 이렇게 불의한 세상, 억압적 질서에 맞서는 교회의 무기다. 단지 아름다운 음악과 위로의 메시지로 끝나는 감성적 시간이 아니라, 현실의 한복판에서 드려지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교회당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울려 퍼지는 종교 행사가 아니다. 예배는 매주 반복되는 리추얼이 아니라, 삶의 전장에 나가기 위한 하늘의 군수 지원소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전쟁의 현실을 자각하고, 진리를 분별하며, 용기와 위로와 공동체의 힘을 얻는다.
그래서 예배는 '시간 떼우기'가 아니다. 예배는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생존의 길이며, 해방의 길이며, 승리의 길이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예배의 깊이를 기억하자.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더 뜨겁고, 더 진실하고, 더 하늘을 닮아가도록 노력하자.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찬양이 우리의 고백이 되며, 기도가 우리의 저항이 될 때,
우리는 이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다.
예배는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주님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