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시아를 살다(신학묵상)

프로메테우스적 비극과 디오니소스적 비극

장준식 2019. 2. 23. 05:27

프로메테우스적 비극과 디오니소스적 비극

 

비극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비극'을 생각하면 '슬픈 일'을 떠올린다. 가령 누군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쓸쓸한 최후를 맞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비극은 가련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비극은 단순히 '슬픈 일'이나 '가련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의 비극 작가의 작품 속에는 '비극'에 대한 정의가 매우 잘 드러나 있다.

 

가령,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보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눈을 피해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 일 때문에 코카서스 산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평생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이것은 비극이다. 그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행한 일이 그러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신에게 반항하거나 보다 높은 의무로 생각되는 것 때문에 역사적 도덕성의 어떤 법에 위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는 그의 강함, 바로 그 때문에 패망한다."(니버, 기독교와 비극)

 

비극이 발생시키는 요인은 인간의 상상력과 정신력이다. 인간에게 지워진 운명을 넘어서는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력이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온다. 아니, 그것 때문에 오는 어려움을 '비극'이라고 부른다.

 

비극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로메테우스적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 비극이다. 프로메테우스적 비극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것을 상상할 때 발생하고, 디오니소스적 비극은 인간이 자신의 의식 아래 있는 무의식의 세상을 상상할 때 발생한다. 이 두 비극의 공통점은 그 상상력이 기존의 도덕적 체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한다. 그리스 비극은 비극의 발생까지만 이야기를 하고 그친다. 사람들은 그 비극을 바라보며,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그 주인공은 영웅이라 불린다), 아니면, 그냥 기존의 도덕적 체계에 순응할 것인지를 결정할 뿐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리스 비극을 넘어선다. 예수에게 일어난 일은 전형적인 그리스 비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비극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버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는 비극적이 아니고 비극의 해결이다"(기독교와 비극).

 

왜 십자가는 비극의 해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