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11. 18. 01:26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냄

 

()나라의 경제(景帝)에게는 유덕(劉德)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유덕은 하간(河間:지금의 하북성 하간현)에 봉하여지고 하간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서(古書)를 수집하여 정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진시황이 모든 책을 태워버린 이후 고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책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오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도 하간왕 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진()나라 이전의 옛 책들을 그에게 바쳤으며, 일부 학자들은 직접 하간왕과 함께 연구하고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하자, 유덕은 한무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고대의 학문을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그는 학문 탐구를 즐길 뿐만 아니라 옛날 책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 (修學好古, 實事求是)”라고 말했습니다. -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 –

 

이스라엘에도 옛날 책이 있었으며, 학문 탐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 책은 구약이고, 그들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 당시에 대표적인 학자들이었는데, 이들은 구약을 열심히 연구하여 나름대로 사회 체계와 질서를 잡아 나갔습니다. 우리는 신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기 때문에 그들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서 기자의 눈을 통해서 봐서 그런 것이지, 그 당시 실제 사회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잔치 집에서 윗자리를 차지해도 좋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명망을 얻으며 사는 최고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최고의 지혜였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최고의 경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누구도 감히 그들이 하는 말에 도전을 하지 못했고, 그들이 하는 행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장 어귀에 나가면 인사 받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늘 상석에 앉아 대접을 받았습니다. 요즘 시대에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사회 지도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유대 사회 최고의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들이 예수를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잖은 당혹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가 성서 기자의 눈으로 해석된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신약 성서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고 믿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구약성경을 지독히도 열심히 탐구해서 나름대로 사회 체계와 질서를 잡아 나갔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하간왕 유덕은 옛날 책을 좋아하고, 학문 탐구를 즐겼고, 그래서 결국 사실로부터 언제나 옳은 결론을 얻어냈다고 하는데,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하간왕 유덕 보다 못한 인물들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들도 하간왕 유덕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 사건이 신비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해서, 그리스도는 감추어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실만을 탐구한다고 해서 그 비밀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런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2:25).

 

우리는 이것을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생떽쥐베리는 자신이 비행기를 몰고 사막을 횡단하다가 불시착하게 된 가운데, 어떤 먼 별에서 지구를 찾아오게 된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로 <어린 왕자>를 전개합니다. 생떽쥐베리가 고장난 비행기의 엔진을 고쳐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그를 부르면서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 줘."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막 한가운데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생떽쥐베리가 깜짝 놀라면서 돌아보니 거기에 '어린 왕자'가 서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가 초면에 그런 생뚱맞은 부탁을 한 이유는 그가 떠나온 작은 별에 두고 온 양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떽쥐베리는 일손을 멈추고 양 한 마리 그리기 시작했는데, 몇 장을 그려도 어린 왕자는 그때마다 '이 양은 병들어 보여', '이건 양이 아니야, 뿔이 달려 있잖아', '너무 늙었어.'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다시 그려 달라고 떼를 씁니다. 생떽쥐베리는 '어린 왕자'가 너무나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지쳐서 나중에는 그냥 '동그란 구멍이 두어 개 뚫려 있는 나무 상자' 하나를 대충 그려 주고는, "네가 찾는 양은 바로 이 상자 안에 있어."라고 말해 줍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그림을 받아 들자마자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야."라고 하면서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리고는 그 그림의 상자에 있는 구멍을 들여다보면서 "양이 자고 있네."라고 하며 아주 만족스러워 합니다.

 

신비란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양과 같습니다. 상상력(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결코 알아 볼 수 없는 형태로 말입니다. 그렇게 구약이라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그리스도를, 평생 구약성경 연구에 삶을 바쳤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받아 든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명시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가 드러난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여전히 그리스도는 신약이라는 상 자 안에 들어 있는 양과 같습니다. 상상력(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결코 사실(성서의 진술)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예수가 곧 그리스도다라는 뜻입니다. 역사적 예수와 고백된 그리스도가 합쳐진 호칭입니다. 이것은 여전히 성경이라는 상자에 감추어져 있는 양과 같은 진술입니다. 당신은 진정, 성경의 상자 안에 감추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성서의 진술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내고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 질문 또한 감추어져 있는 질문이 될 수 있겠군요.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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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