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루터는 농민혁명을 지지하지 않고 반대했을까?]
루터의 농민혁명에 대한 대응에 대하여 질문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을 조금 보충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의 페이퍼를 쓰면 좋은 주제인 듯해요. 왜 루터는 농민혁명을 지지하지 않고 반대했을까?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나 해방신학자들 중에는 농민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루터를 두고 "민중의 배신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의 상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 루터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농민들은 혁명을 일으키면서 12개의 성명서(The Twelve Articles of the Peasants in Swabia)을 내겁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그 당시 농민들의 울분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농민들은 두 집단으로부터 억압을 당하는데, 하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입니다. 이중고를 겪은 것이죠. 요즘엔 교회가 억압하는 단체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정부에 대응하는 수퍼 파워 단체(중세 때는 교회)가 없어서, 현대 사회는 국가(정부)가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는 형국이죠.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국가(정부)의 대응체로 반드시 자리매기매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정치신학적 주장이기도 합니다.
12개의 성명서를 보면, 재미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성명서가 목회자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 번역문을 옮겨보겠습니다. "We humbly ask and request-in accordance with our unanimous will and desire-that in the future, the entire community have the power and authority to choose and appoint a pastor. We also want the power to depose him, if he acts improperly."
요지는 교인들이 목사를 선택하는 권리를 가지고, 파면시키는 권리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민주적이죠. "윤석열을 파면한다."처럼, "전광훈을 파면한다." "손현보를 파면한다." 이런 것을 요구한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 국가가 교회보다 더 민주적인 공동체가 된 듯합니다. 교회가 정말 분발해야 합니다.
농민들의 성명서를 보면, 이렇게 교회 권력의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부 권력의 부당함에 이르기까지, 이 두 집단이 농민을 어떻게 착취하고 억압하는지를 간략히 보여주면서, 이 부당한 법들을 고쳐줄 것을, 그래서 농민의 삶을 해방시켜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성경에 근거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근거해서 진술합니다.
농민혁명 성명서가 성서를 근거 삼아 작성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교회와 정부의 비난의 화살이 루터로 향했던 모양입니다. "농민들이 이렇게 성서를 근거로 깝치는 것은 너(루터) 때문이야!" 그래서 루터는 농민혁명에 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죠. 그래서 루터는 "Admonition to Peace: A Reply to the Twelve Articles of the Peasants in Swabia"라는 글을 씁니다.
루터는 이 글을 통해서, 농민도 달래고, 교회와 정부도 달래서 두 세력 간에 평화 협정을 맺기 원했습니다.
루터가 농민혁명을 반대했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다음 네 가지 정도의 루터 입장 때문입니다.
1) 질서와 권위에 대한 루터의 신학적 입장
ㅡ 루터는 세속 권위(정부/지배자들Lords)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서 13장에서 바울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폭력적 저항은 옳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2) 농민들의 요구가 '복음'을 이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
ㅡ 위에서 보았듯이, 농민들의 12개 성명서는 성경에 근거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특별히, 루터가 가라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근거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루터가 보기에 농민들의 요구는 복음을 빙자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루터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면, 농민들의 요구는 정당합니다.)
3) 루터의 점진적 개혁 사상
ㅡ 루터는 급진적 개혁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대개 이러한 경향을 지닙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혁, 그리고 사회의 개혁보다는 인간 내면의 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ㅡ 스펙타클의 사회를 공부할 때, 마르크스와 바쿠닌, 프루동의 비교를 떠올려 보시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마르크스는 점진적 개혁을 원했습니다. 국가의 필요성을 주장했고요. 그러나, 바쿠닌은 국가 폐지를 요구하고 즉각적, 급진적 개혁을 원했습니다. 루터는 마르크스와 결을 같이 하고, 토마스 뮌처는 바쿠닌과 결을 같이 합니다.
4) 귀족의 비호
ㅡ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에 종교 권력의 횡포를 피하기 위하여 세속 권력(프리드리히 선제후)의 비호를 받습니다.
ㅡ 그리고, 루터는 농민 출신이 아니라 사제 출신입니다.
ㅡ 루터는 기본적으로 교회 권력과 국가 권력에 friendly 할 수밖에 없는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루터의 뿌리이죠.
루터가 무작정 농민혁명을 비판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만 나무란 것도 아닙니다. Admonition to Peace에 보면, "To the Princes and Lords"를 꾸짖는 글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To the Peasants"의 성명서에 응답합니다.
루터는 16세기 인물입니다. 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습니다. 농민혁명이 발생한 것에 루터는 매우 당황한듯합니다. 자신의 성서해석, 그리고 자신의 가르침이 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 사태로 번진 것에 대하여 루터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분노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Admonition to Peace라는 글을 통해 권자들과 농민들과의 화해를 이끌려 했던 것이죠.
500년이 지난 현대 민주주의 관점에서 루터를 보면 루터가 매우 보수적일 수 있지만, 16세기 독일 사회의 정황을 생각해 보면, 루터는 매우 급진적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농민들이 내건 12개의 짧은 성명서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독일의 이러한 전통에서 마르크스 같은 인물이 나오고,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역사의 발전 같습니다.
역사가 퇴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의 공부가 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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