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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12 일기장으로부터

[일기장으로부터]

 

2014년 8월 10일 (일) 흐림 국지적 소나기

 

소설가 유순하 씨의 기사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는 "평생 주변인으로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에세이 서언에선 “갈 데 없는 몽상가였지만 그것이 나의 생애였고, 그래서 미치거나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자족감마저 느끼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이 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게 부끄러운 시대를 맞아 '주변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에게 사명을 일깨우고 이끌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주류와 주변인. 누구나 주류에 속해 살고 싶어한다. 주변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류에 속해 산다는 것은 유순하 씨의 말대로 부끄러운 시대가 되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 <비유의 위력>을 보면, 마가복음의 비유를 분석하면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마가의 복음을 도전하는 비유로 읽을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이름 있는 사람보다 이름 없는 사람을 칭송하는 것은 기독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면서 마가복음이 도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기독교 내에 지도자들의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주위를 환기시킨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름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대로 권력과 권위와 리더십을 행사한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는가!"(263쪽).

 

그렇지 않은가? 교회 밖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소위 주류에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목회자들의 행태를 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처럼 보인다. 교회를 세습하고, 비자금을 조성하고, 스캔들을 일으키고, 복음을 장사치처럼 팔아먹고, 욕망의 노예처럼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이 땅에서 주류에 속해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니 차라리 유순하 씨처럼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양심을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길이 아닐까?

 

'주변인'이란 말, 낯설지만 낯설지 않게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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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0일에 쓴 일기다.

 

요즘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냥 나의 지난 세월에 대한 기록(일기장)을 들춰 보게 됐다. 그때의 묵상처럼, 요즘은 정말 '주류'의 타락이 너무 심해서 주류에 속해 산다는 것 자체가 타락 그 자체가 되었다. 주변인으로 사는 게 속시원하고 의롭고 이로운 시대다. 주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것은 '나는 타락하고 싶다. 나는 타락하는 것을 욕망한다'라고 외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므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변방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오히려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의 왜곡된 시선을 까발린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을 '스스로 추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조금 가진 사람(지식인)이라면 사이드의 말처럼 '스스로 추방하는 사람'으로 살아, 변방으로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며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말고 세상의 변혁을 위해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한 삶 아닐까.

 

실로, 변방의 사람들(주변인)과 연대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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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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