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롭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한다... 자유는 도망치기 위해 터널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유란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는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을 따라 현대 실존주의 철학이 제시한 '자유'에 대한 개념을 반박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유에 대하여 '자기 결정으로서의 자유(freedom as self-determination)' 밖에는 다른 자유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에게 자유란 "선으로 간주되는 것을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제임스 스미스는 실존주의자들이 주조해낸 이러한 류의 자유에 대하여 강력하게 제동을 건다. 그에 의하면, 어거스틴도 처음에는 그러한 자유를 꿈꾸고, 그러한 자유를 추구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 도시로 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러한 류의 자유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더 절망스러운 것은 하나님 조차 잃어버리게 하는 거짓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사람들은 자유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자기 결정으로서의 자유'가 자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이러한 세속 자유를 하나님이 주신 자유라고 착각하며, 거리낌 없이 '자기 결정권으로서의 자유'를 주장하고 실행하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의 결정, 나 자신의 자유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내 맘대로'이다.

 

제임스 스미스는 현대의 '자기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은 현대 실존주의 철학, 특별히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으로부터 발생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자유의 개념을 내면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제임스 스미스는 일그러져버린 자유의 개념을 되살리기 위하여 어거스틴의 영적 순례를 면밀히 살피면서, 그리고 ‘실존주의자들 사이의 그리스도인이었던’ 가브리엘 마르셀의 통찰을 빌어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러한 통찰을 안겨준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한다… 자유는 도망치기 위해 터널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유란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떠나는 여정>, 119쪽).

 

나는 무엇보다 제임스 스미스가 인용한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친구 귀스타브 티봉(Gustave Thibon)의 지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자유에 대한, 정말 지혜로운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함께 귀 기울이기 원하는 마음을 담아 좀 길지만 인용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당신은 속박을 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당신은 탈출을 꿈꿉니다. 하지만 신기루를 경계하십시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도망치거나 달아나지 마십시오. 대신 당신에게 주어진 좁은 공간을 파고들어 가십시오. 당신은 거기서 하나님과 모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평선에서 떠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본질(substance) 안에 잠들어 계십니다. 허영은 달아나지만 사랑은 파고들어 갑니다. 당신이 자신에게서 달아난다면 당신의 감옥이 당신과 함께 달릴 것이며 당신이 달아나는 그 바람 때문에 닫힐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 안으로 깊이 내려간다면 그것(감옥)은 낙원 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있는 자리를 떠나 먼 곳에 갈 필요 없다. 자유는 내 안에 있다. 자유를 원한다면 멀리 달아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으로 깊이 파고 들면 된다. 나의 저 깊은 곳 안에 계신 주님을 향하여!

 

(9-20-2021에 쓴 글. 늦은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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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