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개 넘치는 기독교 인간론]

 

'기개(氣槪)'란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기개를 담고 있다. 정말 그렇다.

 

삼위일체론의 완성(?)에 발판을 놓았던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저서 <성육신에 관하여 On the Incarnation>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로 신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것을 '신화(神化/,theosis)'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유는 우리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어 간다.

 

이러한 진술을 단순히 교리적 진술로만 보면 곤란하다. 그러면 '신화' 교리는 참 우스운 교리가 된다. 우습기 전에 이해가 되지 않는, 우리의 일상과는 참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교리는 존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이지 박제된 생각이 아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기독교의 인간론을 참으로 대담하게 진술한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라니, 감히 누가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히 웃음이 나오는 진술이다. '에이, 무슨 소리하는거야. 우리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어! 장난 치지 마!'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진술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의 인간론만큼 기개 넘치는 인간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화(theosis)에 대한 인간론을 펼친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이 타락한 세상에, 이 비참한 세상에, 이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화만큼 정치적인 진술이 없는 것이다. 실로 기독교는 이러한 기개를 지닌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렵고,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인간을 '개 돼지'로 보면서 피지배자들을 비웃으며 권세를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불의에 기죽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기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성육신의 교리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아무리 비참하고 불의하더라도 거기에 굴복하거나 기죽지 말아야 한다. 누가 감히 우리의 인간성을 훼손할 수 있으랴. 누가 감히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할 수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처럼 되어가는 존재이다. 신적인 존재, 그 고귀한 존재의 품위를 누가 무너뜨릴 수 있으랴.

 

신화(神化)적인 존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그 어떠한 행위도, 그 어떠한 정치세력도, 그 어떠한 불의도, 우리는 거부한다. 그리고 저항한다. 기개를 저버리면 지는 것이다.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품고,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기 위하여 무쏘의 뿔처럼 가자.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