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4. 8. 17. 23:16

부르심과 새마음

(삼상 10:1-13)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직업을 콜링(calling) 또는 보케이션(vocation)이라고 부른다. 보통 한국 말로 천직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하늘이 내려주신 직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는 직업에 대해서 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에서 비롯된 직업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독특한 신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다는 신앙관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즉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 것도 그냥 우연히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삶은 질적으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라는 것은 그렇다고 믿는 게 좋다라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라는 것은 신앙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신앙체험이 인생 가운데 있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많이 만난다.

 

우선, 노아가 그런 경우다. 성경에서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홍수심판을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도 그렇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험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가 무작정 길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험을 통해서 그곳으로의 부르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간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당신의 특별한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 일에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모세도 그렇다. 모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온통 하나님의 섭리로 가득 차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가운데 물에서 건져냄을 받고 살아나 이집트의 궁전에서 자라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여 자기 인식이 일어날 때쯤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받는다. 범죄자로 몰려 왕궁을 떠나 사막에서 은둔 생활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낼 것을 명하신다. 모세는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뿌리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경험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일을 구경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경험하거나, 북극에 가서 오로라는 경험하게 되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사명을 주지는 않는다. 그랜드 캐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그 웅장함에 놀라 입이 딱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사명을 주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처럼 웅장한 자연을 구경하면서 받는 감동과는 다르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웅장한 자연을 구경하면서 받는 감동 같은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하나님 경험은 그 이상이다. 거기에는 뭔가 부르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 부르심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하나님 경험은 획일적이지 않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가장 극적으로 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감옥에 투옥시키고 그들을 처형시키는 일에 열심을 냈던 사람이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어떤 신적 경험을 한다. 그것을 통하여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가 고백하고 있듯이 그는 하나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그 일을 하다가 순교 당한다.

 

본문의 사울은 우연히 사무엘을 찾아가게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성경은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리고, 아들 사울을 보내 그것을 찾아오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사울은 사무엘에게로 보냄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라고 하는 것의 표지는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해서, 내가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것의 표지는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 드러나는가?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사울은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의 절차를 걸쳐 왕으로 세워진다. 첫째,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는다. 이것은 내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둘째, 사울은 백성들의 제비뽑기를 통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 중에 왕으로 뽑힌다. 이것은 외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외적으로 확증해 주는 공동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것은 열매이다.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을 통해서 왕으로 세워졌지만, 그가 실제적인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본격적으로 왕의 직위를 감당하게 되는 것은 열매가 맺혀진 후부터였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소명인데,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증거는 바로 새마음으로 나타난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9). 사울은 하나님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새마음을 받았다. (God changed his heart.) 분명 사울은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것을 확증해 주는 사건이 그 다음에 나오는데, 그것은 사울이 예언을 하는 장면이다.

 

사울은 전혀 예언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새마음을 부여 받은 사울은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이것은 사울의 변화에 던지는 놀라움의 표현이다. 사울이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울을 새마음을 받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앙의 깊이와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좋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시원치 않은 원인은 바로 하나님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사명을 받게 되는데, 즉 부르심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삶의 열정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과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물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죄도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큰 벼슬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겸손히 섬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을 헤치지 않는다.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새마음이 되었고, 그냥 새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살아 움직이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스겔서 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에서 불러내시며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5-27).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 새마음의 역사가 있다. 새마음은 돌아섬의 마음이다.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의 돌아섬의 마음이다. 새마음은 굳은 마음에서의 돌아섬의 마음이다. 새마음은 정결한 마음, 겸손한 마음, 섬기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 온유한 마음, 즉 사랑의 마음이다.

 

우리는 그냥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부르심, 신앙인으로서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 하나님 경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경험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그것에 대한 갈망이다. 예배도 기도도 찬양도 봉사도, 모두 하나님 경험을 위한 통로이다.

 

하나님 경험은 인생을 바꾼다. 성경은 온통 그 이야기뿐이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그리고 하나님 경험을 통하여 새마음이 주어졌는가? 그렇다면, 부지런히 그 사명을 감당하시라.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셨는가? 낙망하지 마시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만나고자 부르짖는 자를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여러분, 믿으시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 원하신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라. 그리고 새롭게 되시라. 그래서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시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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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