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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5.07 우리 교회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 교회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톰 레이너. ‘처지앤서즈’(Church Answers)라는 교회 컨설팅 회사의 CEO입니다. 교회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컨설팅하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이 분이 쓴 책 중 『죽은 교회를 부검하다』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톰 레이너는 “왜 그 교회는 문을 닫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본인이 컨설팅 했던 교회 중, 죽어가는 교회, 죽은 교회를 부검해서, 교회가 왜 문을 닫게 되었는지를 분석합니다.

 

톰 레이너의 분석이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해서, 교회가 놓여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컨텍스트를 분석하고, 교회의 쇠퇴 원인을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그의 분석은 다분히 교회 내적인 원인들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함의를 가집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와 똑 같은 이유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은 그냥 주님께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교회가 죽어가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톰 레이너도 책에서 밝히고 있지만, 사실 교회는 죽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미치는 곳이 아닙니다. 바울의 신학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부활의 몸이기 때문에 죽음과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죽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보통 명사는 죽지 않겠지만, 교회라는 고유 명사는 죽을 수 있습니다. 보통 명사는 보편 교회를 가리키고, 고유 명사는 역사적인 지역교회를 가리킵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죽지 않지만, 시간 안에 있는 교회는 소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교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교회는 죽었거나, 죽어갈까요?

 

톰 레이너는 10가지의 사인(죽은 이유)을 제시합니다. 그 10가지 사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점진적인 쇠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쇠퇴했다.

2. 과거의 영광: 어떤 변화도 한사코 거부했다.

3. 지역 사회를 외면: 그들만의 교회였다.

4. 탐욕: 내부 지향적으로만 예산을 사용했다.

5. 지상대명령 망각: 어느 순간 지상대명령에 대한 순종이 사라졌다.

6. 취향이 이끄는 교회: 언제나 나, 나 자신을 위한 성도들로 가득 찼다.

7. 목사의 잦은 교체: 목사들은 성도들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8. 기도생활 부재: 그 교회는 좀처럼 함께 기도하지 않았다.

9. 사라진 비전: 교회의 목적과 사명을 잃어버렸다.

10. 교회 시설을 둘러싼 갈등: 선한 청지기가 아니라 교회 시설에 집착했다.

 

죽은 교회들의 공통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과거가 그들의 기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좋았던 옛날의 향수에 젖어 그들의 전성기를 과거에 두고 그 옛날을 그리워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변화도 싫어하고, 과거에 집착하다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경계해야 할 첫 번째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좋은 날은 과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좋은 날은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고 있습니다.

 

톰 레이너가 제시한 사인들 중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지상대명령 망각’입니다. 지상대명령은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지상대명령은 ‘가라’(Go)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면서 세 가지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제사 삼는 것, 세례를 베푸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것. 톰 레이너에 의하면, 죽은 교회는 어느 시점에서 지상대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합니다. 죽은 교회는 무엇보다 ‘가는 것’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왜 죽은 교회는 어느 순간 가는 것을 멈추었을까요? 톰 레이너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는 것’은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65쪽) 결과는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지만, 순종은 우리의 노력입니다. 신앙은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앙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신앙은 노동입니다. 먹고 사는 것만 노동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먹고 사는데 필요한 노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 힘을 쓰지만, 신앙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망각했습니다. 노동이 없는 신앙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노동이 없는 교회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톰 레이너의 열 가지 사인 중, 가장 날카로운 분석은 여덟 번째 사인인 ‘기도생활 부재’입니다. 죽어가는, 또는 죽은 교회의 교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톰 레이너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교인들이 함께 기도했나요?” 그들은 기도했다고 대답합니다. 톰 레이너가 컨설팅한 죽은/죽어가는 교회들 중 기도를 안 한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교회는 죽은/죽어가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바로 그들은 ‘기도’라는 행위는 했지만, ‘의미 있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역동적인 교회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에서 중요한 것은 ‘힘쓰니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듣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기도하지 않는 것은 숨 쉬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에게 기도는 가장 중요한 행위였다. 기도는 초대 교회 생명의 원천이었다.”(99쪽)

 

죽은/죽어가는 교회에는 ‘의미 있는 기도’가 없습니다. 의미 있는 기도란 서로가 서로의 삶을 보듬어 주는 사랑과 섬김의 기도이고,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놓는 헌신과 순종의 기도입니다. 그냥 우리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기만 해도 ‘의미 있는 기도’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하루, 또는 자신의 일주일을 들여다보십시오. 형식적인 기도 말고, ‘의미 있는 기도’를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말 중 가장 공허한 말은 ‘기도하겠습니다’, 또는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 치고 실제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의미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도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릎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삶과 교회는 죽지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우리 세화교회는 이 책을 교훈 삼아 세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우리 교회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둘째, 주님의 지상대명령에 따라 열심히 ‘가는 교회’가 되자. 셋째, 의미 있는 기도를 하는 교회가 되자.

 

우리 교회는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에 부어주실 은총을 기대합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