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7. 1. 08:27

기쁨에 놀라다 (Surprised by Joy)

(요한복음 15:1-11)


성경의 어느 구절을 보면, 주일학교 때 불렀던 어린이 찬송가의 한 구절이 생각날 때가 많다. 오늘 말씀은 이 찬송가를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의 생명의>라는 곡이다.

 

1) 예수님은 생명의 참 포도나무 /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시니 / 가지들아 열매를 맺지 않으면 / 아낌 없이 찍어서 던지시리라

2) 포도나무 가지는 우리들이니 / 살아 있는 원줄기 주님께 붙어 / 잎도 피고 꽃 피워 열매를 맺자 / 주렁주렁 소담한 포도 송이를

3) 사랑하는 가지야 내 안에 있어 / 무엇이나 원하면 이뤄 주리니 / 씩씩하게 자라고 높이 뻗어서 / 하늘 나라 열매를 많이 맺어라

 

C. S. 루이스라는 분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불리는 분이다. 이 분이 지은 책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얼마 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나니아 연대기>이다. 원래 소설 작가는 아니지만, <반지의 제왕>을 지은 톨킨의 영향으로 기독교 변증을 위한 판타지 소설을 짓기도 했다. (톨킨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요즘 미국의 팀 켈러 목사를 21세기 미국의 C. S. 루이스라고 부르는 매체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별로 어울리는 별명은 아닌 것 같다. C. S. 루이스가 인정할지 잘 모르겠다. 팀 켈러 목사도 훌륭한 목회자인 것은 분명하나, C. S. 루이스에 견줄 만 한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안 선다.

 

C. S. 루이스가 쓴 <Surprised by Joy,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회심했는지에 대한 것을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 책에서 그가 기독교를 떠나 헤맨 이유를 기쁨의 상실 때문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결국 기쁨을 찾아서 기독교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쁨을 상실한 인생만큼 불행한 인생이 없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기쁨의 갈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 그리고, 기쁨을 얻을 때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예배 드리는 것도 결국에는 기쁨을 얻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예배가 우리에게 기쁨이 되기 때문에 예배에 나오는 것이다. 예배가 기쁨이 되지 못하는 이에게 예배는 곤욕스러운 시간일 뿐이다.

 

루이스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계기는 비관적인 삶 때문이었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아버지의 우울증세가 가족을 괴롭혔고, 기형적 관절병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기쁨을 잃었고, 신앙을 저버리게 되었다.

 

기쁨이 없다고,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이들은 더 간절하게 기쁨을 갈구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쁨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올바른 기쁨의 길을 가지 않고, 결국 쾌락의 길로 들어서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쾌락과 기쁨은 다르다. 쾌락은 뭔가 반짝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으나, 결국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을 망가뜨린다. 일종의 늪과 같다. 빠지면 헤어 나오기 정말 힘들다. 쾌락은 그것 자체에 몰두하게 하고, 그것 자체가 우상이 되게 한다. 돈의 쾌락에 빠진 이들은 돈이 우상이 된다.

 

그러나, 기쁨은 무엇인가 숭고한 것을 바라 보게 한다. 거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의미를 깨닫고 기쁨의 원천을 바라 보게 한다. 무엇인가에서 참 기쁨을 발견하는 순간 기쁨은 이렇게 속삭인다. “난 네가 찾는 그것이 아니야. 난 그것을 상기시키는 존재일 뿐이야. , 보라고! 내가 무엇을 상기시키지?”

 

<예기치 못한 기쁨>에 대한 북리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루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기쁨을 추적했을 때, 기쁨은 그에게서 벗어나고 허무한 느낌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기쁨을 향한 집착을 놓으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품에서 루이스가 내려놓았던 삶의 기쁨과 소망과 평안까지도 선물로 주셨다.”(장경철 _ 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C. S. 루이스의 대표작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기쁨과 능력과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것을 가진 존재에게 가까이 가야 하며, 나아가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나눠 주시는 상품 같은 게 아니다. 실재의 중심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능력과 아름다움의 거대한 분수이다. 그 분수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은 물보라에 젖을 것이고, 다가가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메마른 상태에 머물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히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이 어떻게 시들어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C. S. 루이스의 경험과 설명은 오늘 말씀에 대한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이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인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기쁨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 기쁨이 있으려면, 참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실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참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말이다.

 

혹시, 삶의 기쁨이 없어 사는 게 재미 없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곰곰이 돌아보시라. 지금 내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단단히 붙어 있는가, 아니면 살짝 붙어 있는가, 아니면 거기서 떨어져 나와 있는가. 기쁨은 우리가 생산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그리고 C. S. 루이스의 고백처럼 기쁨은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기쁨 자체에 집착하거나, 기쁨을 찾아 헤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기쁨은 신기루이고, 기쁨은 우리의 능력 바깥에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쁨을 향한 욕심을 내려 놓고, 기쁨의 원천이시고, 기쁨의 수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참포도나무이신 그분과의 깊은 사귐 가운데 거하면, 그분의 기쁨이 우리에게 수여 되어, 어느덧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쁨 충만한 삶 사시는 믿음의 자녀가 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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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