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6. 10. 6. 14:56

베네딕도 성인의 '정주(Stabilitas)'라는 개념이 참 좋다. 정주란 자기 자신 곁에 있는 것, 즉 자신의 암자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막 교부들의 교부집에 이런 말이 있다. "암자에 머무르며 너 자신과 노동에 집중하여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큼 너의 성장에 이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방랑 ''는 영혼의 성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종의 '버티기'가 결국 영혼을 빚어가는 것 같다.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일을 해보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현재 속한 공동체(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안에 머무르는 '정주'의 훈련이 쌓이지 않으면, 결국 공동체를 떠난다 해도 별다른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사막 교부의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한 수도승이 아르세니오스 원로에게 말했다. "저는 금식도 못하고 일도 못하니 나가서 병자라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괴롭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악의 싹을 알아본 스승은 그에게 말했다. "가서 일하지 말고 쉬면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거라. 그러나 암자를 떠나지는 마라!"

 

우리는 우리가 속한 '암자'를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부질 없는 일이다. 베네딕도 성인의 '정주'는 요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 깨달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저 침묵 가운데, 정주할 뿐.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