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귀가하던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물탱크에 유기한, 차마 떠올리기 싫은 사건입니다. 범인의 이름이 흥미롭습니다. 김길태인가 했더니, ‘길에서 태어났다해서 길태라고 합니다. 이름처럼 갓난 아기 때 교회 앞에 버려졌다고 합니다. 32년 전 그 어느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비극입니다. 버려진 그를 교회의 지인을 통하여 현재 양부모가 입양하여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입양 사실을 안 그는 그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친구도 거의 없고, 양부모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범인 김길태를 나무랄 수 있고, 그를 길에 버린 친부모를 나무랄 수 있고, 맡았으면서도 잘 키워내지 못한 양부모를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일입니다.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아서 어느 한쪽이 잘못되면 어느 한쪽에서는 그 대가를 꼭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32년 전 한 아기가 길에 버려진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인 것입니다. 그냥 안타까워하고 말 일이 아니라, 기도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이 어느 누구에게 실제적으로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혀를 쯧쯧 차면서 안타까워하지만 그 일은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심하게 넘기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사회는, 우리 인간관계는 서로가 모두 얽혀 있습니다. 마치 한 몸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비극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비극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아픔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 사회이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선한 일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기쁨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 되고 선한 일을 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이 땅 위에 천국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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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