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5. 1. 28. 01:43

죽음의 섬

-   뵈클린의 <죽음의 섬>

 

지상 최대의 작전이 수행된다.

 

염세주의자는 아무나 될 수 없다.

흔들리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며 죽음의 손짓을 생각할 수 있는 자,

까마득한 바위절벽을 보며 생() 뒤에 감춰진 사()를 투시할 수 있는 자,

손댈 수 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멀미에 시달리는 사생활들을 토해내는 자,

이들만이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다.

 

지상 최대의 작전은 용병 두 사람에게 맡겨진다.

카론과 뱃사공.

카론에게는 저승으로 영혼을 보내는 일의 임무가 주어지고

뱃사공에게는 죽음의 섬으로 배를 모는 임무가 주어진다.

 

염세주의자들은 관을 하나 짠다.

그리고 그 관 속에 눕힐 존재를 설정한다.

쇼펜하우어는 사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가고

뵈클린은 그림으로 염세주의를 형상화한다.

마지막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소리를 통해

사생활의 멀미에 시달리는 자들을 성()의 세계로 초대한다.

 

마침내 지상 최대의 작전은 성공을 거두고,

관을 실은 배가

뱃사공의 노를 따라 죽음의 섬으로 들어가고

흰 옷 입은 카론은 관속에 드러누운 존재를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을 관장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때

염세주의자들은 모든 감각의 작용을 일제히 멈추고 일어나

이렇게 외친다.

신은 죽었다!”

 

관 속에 누운 것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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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