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12. 19. 03:33

천재일우(千載一遇): 년에 만날 있는 기회 /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이르는

 

동진(東晉)의 학자 원굉(袁宏)은 삼국시대의 탁월한 신하 20명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을 썼는데, 그 중 위()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에서 '명마를 가릴 줄 아는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 천리마[] 한 필을 찾아내지 못한다 [夫未遇伯樂則 千載無一驥]'고 적고, 어진 임금과 뛰어난 신하의 만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이 세상의 통칙이며 [夫萬歲一期 有生之通途(부만세일기 유생지통도)] 천 년에 한 번의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진귀한 해후다 [千載一遇, 賢智之嘉會(천재일우 현지지가회)]. - 문선(文選) 원굉(袁宏)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 –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용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뜻입니다. 여름만 되면 납량특집 단골 주제로 등장하는 구미호도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전설을 들으면, 이무기도 구미호도 무작정 천 년을 기다린다고 용이 되거나 인간이 되는 듯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소망과는 달리, 또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천 년을 기다려온 바로 그 기회의 날에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그 기회를 놓쳐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한 낱 미물에 불과한 이무기이고 구미호이지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놓여버린 천 년 만에 온 그 기회를 또 얻기 위해서 또 다른 천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세월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한 맺힌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기회의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기회는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기회가 지나고 난 뒤에 아무리 울어도 소용 없는 법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그만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고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머뭇거리거나 고민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라는 지도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출애굽을 감행합니다. 이들은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천재일우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둘러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합니다. 그 탈출할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재현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이 날 유대인들은 지팡이를 지고 배낭을 메고 서서, 급하게 먹을 것을 챙기느라 누룩을 넣지 못한 빵을 손에 쥐어 들고 먹는 시늉을 합니다. 출애굽 사건이 그만큼 급박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급박한 상황의 절정이 누룩을 넣지 않는 빵에서 나타납니다.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이 정도로 긴박하게 천재일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먹을 것조차도 제대로 챙길 수 없습니다. 기회를 놓치고 나면 먹는 것도 먹는 것 같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이러한 긴박함이 전해지는 단락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배와 그물, 그리고 가족들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좀처럼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생계와 가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까 말이죠. 그런데 복음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자들을 부르시는 정황은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1:15). 라는 복음을 선포하신 뒤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를 보여줍니다.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천재일우입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생계도 가족도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오직 그 나라는 회개(메타노이아) 와 믿음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데, 회개와 믿음이란 온 존재를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고 그것을 향해 여는 행위입니다.

 

어진 임금(현군)과 뛰어난 신하(명신)이 만나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듯이, 하나님 나라와 참믿음의 사람이 만나면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새창조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원하는 구원입니다. 신앙이란 천재일우같은 사건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인간의 응답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신비로운 구원사건입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놀라운 존재입니까? 신앙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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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