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서 생각이 트일 시절, 중학교에 갓 들어간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제 마음을 사로 잡았던 시()입니다. 이 시의 제목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고사성어가 관포지교(管鮑之交)입니다.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들의 우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후에 관중은 명재상(名宰相)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 그가 명재상이 되기까지는 친구였던 포숙의 공이 지대했습니다. 관중이 말년에 포숙에 대한 칭송의 말을 남겼는데, 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어릴 적 곤궁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의 분배를 내가 포숙보다 더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었고, 벼슬 길에 올라 많은 실수로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했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아주었다. 또한 내가 포숙아와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내가 세 번이나 도망을 치자 사람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질책했지만 포숙아는 내가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알아 주었고, 또 나와 포숙아가 제나라의 두 공자인 규()와 소백(小伯)의 사부가 되었다가 내란에서 공자 규를 모시던 내가 공자 소백에게 패하여 참수형의 위기에서 포숙아의 설득으로 목숨을 구하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까지 나에게 물려주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알아주었다. 결국 나를 나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생각하고, 좋은 것 많이 보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친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는 것일까요? 교회에서 이런 친구를 찾지 못하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런지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도록, “관포지교”, “지란지교를 꿈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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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