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I2018. 6. 30. 09:59

 

아이 같은 지도자

(3:1-1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2:22). 이렇게 끝나는 말씀에 이어, 이사야서 3장 말씀은 이스라엘이 의지한 것들을 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포가 이어진다. 무서운 말씀이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사람 높이는 것을 그만두라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사는가? 두터운 질문이다.

 

의지가 되는 것에 마음을 쏟는 게 인지상정이다. 의지가 되는 것을 우리는 소중하다고 여긴다. 선지자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하나님만 높다!” , 하나님만 의지할 가치가 있다는 선포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치 없는 것에 얼마나 매달리며 사는가.

 

이스라엘이 의지한 것들을 끊으시겠다는 선포에 포함되는 것은 양식과 물을 포함해, 사회를 지탱하는 요소인 용사, 요술자부터 군사, 재판, 정치, 행정, 종교, 기술 등 각 분야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지도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손쉽게 이야기 한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러다 보니 양식과 물을 얻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양심을 팔고 신앙을 저버린다. 우리는 하나님을 간구하지 않고 양식과 물을 간구한다. 하나님은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시는 분에 불과하다. 양식과 물을 주신 후, 하나님은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에게 굽신거린다. 그들이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친해지려고 재물과 시간을 쓴다. 그들과의 교제를 위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시한다.

 

양식과 물이 제거되고, 각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이 모두 제거된 사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선지자는 계속 선포한다. 그 빈자리를 어린아이와 같이 우매하고 무능한 자들이 대신할 것이라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학대와 폭력이다. 계층 간의 갈등의 증폭이다. 5절에 나오는 교만할 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하브압박하다’, 혹은 공격해 겁먹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매하고 무능한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되면, 다스림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윗사람을 겁박할 정도로 사회가 무질서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 질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도 무너진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한 구절은 웃픈 현실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 집에서 자기 형제 하나를 붙들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게는 겉옷이 있으니 우리의 우두머리가 돼 다오. 이제 이 폐허더미가 네 손안에 있다’”(6). 경제가 무너지니, 단지 겉옷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궁핍이 극에 달한 것이다. 겉옷 하나 가진 사람이 폐허더미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겠는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허망한 것을 소망하는 이 현실이 웃프다.

 

양식과 물도 제거되고, 사회의 유능한 지도자들도 제거되고, 경제도 파탄나는 일이 왜 예루살렘과 유다에 일어났을까?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이영광의 눈을 범하였도다!”(8). 여기서 범하였도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마라반역적이다’, ‘도전하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마땅히 겸손하게 엎드렸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 앞에서 반역하고 도전했던 것이다.

 

구약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율법에 드러난다. ‘영광의 눈을 범했다는 뜻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그 율법과 반대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의 뜻에 도전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개념에서 의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율법주의로 잘못 해석하면 안 된다. 여기서 언약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으로 인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의로운 자, 의로운 행동이란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의로운 자로서, 율법에 근거하여 의로운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가볍게 여기고 율법을 벗어나 반역적이고 도전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과 유다 지도자들의 자질과 상태에 대하여 문학적인 조롱을 한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12). ‘학대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가쉬누르다’, ‘압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백성을 압박할 만큼 힘을 가진 자들이 아이들이라고 하는 것은 큰 조롱이다. 지도자들의 자질과 능력이 형편없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이 없는 자들이 백성을 압박할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도자(메아쉐르)’아사르에서 파생된 말로, ‘반듯하게 가다, ‘(반듯하게 가도록) 인도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미혹하다로 번역된 타아방랑하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아사르타아는 매우 상반된 뜻을 지닌다. 그런데, 인도자란 아사르’, 즉 백성이 하나님의 길로 반듯하게 가도록 인도하는 자들이어야 하는데, 선지자의 질책을 받고 있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타아’, 즉 백성을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의 비유는 문학적인 비유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와 여자가 어리석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어리석음과 여자의 약함이라는 특성을 빌려올 뿐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약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이와 같은 지도자는 지혜와 힘이 모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기에 부족하다. 아이와 같은 지도자가 백성을 압박할 만큼 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한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자들은 어리석음과 약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지도자를 세우는 백성들은 아이 같은 지도자를 걸러내는 분별력이 필요할 것이다.

 

'바이블 오디세이 I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전쟁  (0) 2016.05.05
에스겔서의 하나님  (0) 2015.11.11
고난을 진지하게 대하는 영성  (1) 2013.01.19
울게 하소서  (1) 2012.11.17
아들에게 들려주는 히브리서 이야기 1  (1) 2012.05.07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