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8. 24. 04:02

하나님이 하신 일

(창세기 45 1~8절)


 

신파극이라고 있다. – (구파극 가부끼): 한일합방 이후 1910년 대에 일본에서 수입돼 유행했던 연극의 일종이다. 신파극의 소재는 가정비극과 사극이 주조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일제 강점기에 큰 인기를 모은 한국의 신파극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가 부잣집 아들인 광호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고 남편의 약혼녀까지 살해한 뒤 순사가 된 오빠에게 잡혀가게 된다. 흔히 〈홍도야 울지마라〉로 불린다. 

 

원로가수 故 김영춘 씨가 부른 <홍도야 울지마라>는 한국 가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노래이다. 이서구 작사 / 김준영 작곡의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3.    홍도야 울지마라 굳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 오리라.


<홍도야 울지마라>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셉과 관련하여 노래를 이렇게 개사해 보았다. 제목은 <요셉아 울지마라>이다.

 

1.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신앙의 등불

  요셉아 울지마라 주님이 있다

  신앙인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요셉은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신앙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3. 요셉아 울지마라 굳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 오리라.

 

홍도와 요셉 간에는 차이가 있다. 홍도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요셉의 인생은 은혜로 끝난다. 홍도는 노래의 바람대로 살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자기 손으로 끝내 인생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만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노래의 가사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3절이다. “홍도야 울지마라 굳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 오리라.” 이 노래의 가사가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에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분명 담겨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 힘겹게 살던 한민족에게 <홍도야 울지마라>의 노래는 결심과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눈물을 닦고 굳세게 살아야지!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마음 가짐과 몸 가짐을 흐트러뜨리면 안 돼지! 마음을 높게 갖고, 행실을 바르게 하면, 언젠가 즐겁게 웃을 날이 올 거야! 그래 힘을 내자!” 이러면서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아도 인생의 질곡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홍도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셉은 정말 이렇게 살았다. 형들(가족)의 버림을 받고 노예로 팔려 갔으면서도 마음과 행실을 지키며 살았다. 울지 않았다. 신앙인의 갈 길을 갔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가는 길에 낀 구름을 바람으로 걷어 주셨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더하신다는 뜻이다. 창세기 3024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것은 요셉의 엄마 라헬이 한 말이다.

 

장자권 사건으로 인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몸을 피신한 야곱은 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된다. 라헬을 아내로 맞이 하기 위해 7년을 하루 같이 일한다. 그런데, 삼촌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면 7년을 더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야곱은 라헬에 대한 사랑 하나로 7년을 더 버틴다. 그리고 결국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런데, 삼촌 라반은 야곱과 라헬의 첫날 밤 술수를 쓴다. 라헬 대신 그의 첫째 딸 레아를 들여보낸 것이다. 그렇게 야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레아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런 후에, 삼촌 라반은 야곱이 사랑한 라헬을 야곱의 아내로 준다.  

 

1이제 야곱의 아내가 된 두 자매는 자식을 통해 경쟁하게 된다. 그런데, 레아가 아들을 넷이나 낳는 동안 라헬은 한 명의 자식도 낳지 못한다. 그래서 라헬은 자신의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둘 낳게 한다. 그것에 시샘을 한 레아도 자신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둘 낳게 한다. 그 이후 레아는 아들을 둘 더 낳는다. 이렇게 언니 레아와의 치열한 경쟁의 끝자락에 얻는 자식이 바로 요셉이다.


요셉이 라헬과 라헬을 사랑한 야곱에게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겠는가! 그리고 라헬이 사랑하는 남편 야곱에게 자식을 더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으면 어렵게 낳은 자식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겠는가! ‘주님, 아이를 더 낳게 해주세요! 더 해주세요!’

 

야곱에게 요셉은 아픈 자식이다. 엄마 라헬의 바람대로 라헬은 그 이후에 자식 한 명을 더 얻는다. 그런데, 그 자식을 낳다가 죽고 만다. 그가 바로 야곱의 막내 아들 베냐민이다. 엄마가 죽는 바람에 요셉은 형들의 틈에서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엄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랐다.

 

우리는 흔히 요셉을 꿈 꾸는 자라고 부른다. 요셉은 혼자서 공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꿈도 많이 꿨다. 왜 요셉이 혼자서 공상하고, 꿈을 꾸었겠는가? 형들이 놀아주지 않아서이다. 요즘 말로 하면, 요셉은 왕따였다. 아버지 야곱이 그러한 요셉의 처지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이 안쓰러워 요셉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 준다. 다른 자식들은 그냥 일반 옷 입힐 때, 요셉에게는 색동옷을 입혔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요셉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요셉은 형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꾼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했다. “형님들, 내가 이런 꿈을 꾸었어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형님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했어요!” “이런 꿈도 꾸었어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을 했어요!” 그런데, 요셉의 꿈 이야기를 좋게 받아들인 형제들이 없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요셉에 대한 미움만 키워갔다.

 

모든 범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미움은 마침내 사고를 친다.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던 어느 날, 형들은 아버지 심부름을 온 요셉을 음모를 꾸며 죽이려 한다. 그때 아버지 야곱에게 큰 죄를 범한 맏형 르우벤과 마음이 따스했던 넷째 형 유다의 만류가 없었다면 요셉은 음모에 말려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만은 건져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다.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 당시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의 삶은 짐승 이하의 삶을 살았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셉은 처음에 애굽의 장군 보디발에게 팔려갔고, 거기에서 험한 일을 겪고(보디발 아내의 유혹과 모함), 감옥에 갇힌다. 요셉에게는 아무런 인권이 없었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안개 속에 갇힌 인생이었다. 꿈을 꾸었지만, 그 꿈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이 아무것도 없었다.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과 행실을 높게 갖는 것외에는 없었다.

 

위의 개사한 노래 <요셉아 울지마라>하늘이 믿으시는 네 신앙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가사처럼,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인생에 낀 구름을 걷어 주신다. 그리고, 그는 애굽의 총리 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토록 갈망하던 형들(가족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오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눈물 나는 신파극장면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장면일 것이다. 형들은 가뭄에 목숨을 구걸하러 애굽에 왔고, 요셉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 자신을 밝힌다. “나는 요셉이라!” 오늘 말씀 가운데서도, 자기 자신을 밝힌 요셉을 보면서 형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셉의 고백은 평범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5, 8).

 

요셉의 고백은 한 마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하셨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죽도록 고생해 놓고, 자신들을 이 궁지에 몰아놓은 장본인들(형들)을 앞에 두고, 그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그들의 죄책을 지워주며,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선포할 수 있는 요셉의 신앙은 전무후무할 정도이다.

 

우리의 인생은 때로, 아니, 자주,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요즘 한국에서 어떠한 장군의 갑질 논란이 한창인데, 장군 운전병(공관병)을 한 나로서 군대에 대한 나의 기억을 여기에 꺼내 놓고 싶다.

 

나는 김영삼 정권 때 (문민정부) 군생활을 했다. 평소에 군대를 가면 장군 운전병을 하고 싶다고 소망하고 기도했는데, 소망대로 육군본부 작전처장 운전병(공관병)을 했다. 군생활 당시, 국군의 날 행사를 계룡대(육해공군 본부)에서 했다. 국군의 날 행사를 지위하는 장군을 제병지휘관이라고 한다. 제병지휘관은 실세 중 한 명이 맡게 되어 있다. 그때 제병지휘관을 맡은 장군은 육군본부 감찰감 이영대 장군이었다. 그런데, 제병지휘관을 맡아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하던 중, 이영대 장군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췌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급히 췌장암을 치료하러 미국에 갔다.

 

국군의 날이 다가오고 있어, 병가를 낸 이영대 장군을 대신 할 제병지휘관을 급하게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9군단 부군단장을 하던 이남신 장군을 급하게 제병지휘관에 임명했다. 9군단 부군단장은 투 스타로서 옷을 벗는 사람이 가는 자리다. 한가한 장군이라 급하게 제병지휘관 자리를 맡긴 것이다. 아무튼, 이남신 장군은 땜빵으로 제병지휘관 자리를 맡아, 국군의 날 행사를 치른 것이다.

 

그런데,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동안 췌장암을 치료하러 미국에 간 이영대 장군은 그만 죽고 만다. 이영대 장군이 죽자 육군본부 감찰감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그때 국군의 날 행사를 잘 치른 이남신 장군이 별세한 이영대 장군의 후임으로 육군본부 감찰감 자리에 온다. 인생 역전이다.

 

그때 운전병이 9군단에서 함께 왔다. 운전병에게 이남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운전병이 정말 괴로워했던 것은, 장군을 모시고 매일 같이 새벽기도에 가는 것이었다. 운전병이 못 일어 나면, 운전병을 깨우지 않고, 장군 본인 혼자 차를 몰고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신앙에 열심인 장군이었다.

 

이남신 장군은 요직인 육본 감찰감 자리에서 진급을 하여, 기무사령관으로 간다. 그러는 사이에 정권이 바뀌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으로. 이남신 장군은 호남 출신이다. 그래서 그 이후, 이남신 장군은 3군 사령관을 거쳐, 합참의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다. 투 스타에서 옷 벗는 9군단 부군단장 자리에 있다가, 우연히 땜빵으로 제병지휘관을 역임하고, 어부지리로 육본 감찰감 자리에 오르고, 그 이후, 정권이 바뀌어 합참의장까지 지내게 된 것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내가 아는 한,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이다.

 

내가 지금 기도 열심히 하면 인생역전 된다는 기복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부흥회 같은 데 가면,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 가족들이니까 좀 더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이영대 장군은 어떤 사람이었겠는가? 절에 다니던 사람이었겠는가? 교회 안 다니던 사람이었겠는가? 아니다. 이영대 장군도 이남신 장군 못지않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장군이다. 이영대 장군 운전병도 이영대 장군이 매일 같이 새벽기도 가는 것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러면 뭔가?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니, 요셉처럼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삶을 살자. 마음과 행실을 높게 갖자. 그러면, 우리의 입술에서도, 감사와 찬송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고백이 흘러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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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