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10. 31. 04:55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Prima schola alba est)

(마태복음 11:28-30)

종교개혁500주년 기념 예배

                       

함께 경청한 클래식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 5 <Reformation>이다. 이틀 뒤, 10 31일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개신교 내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느라, 각 교단이 나름대로 바쁘다. 멘델스존은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곡을 만들었는데, 프랑스의 7월 혁명과 가톨릭 진영의 극심한 반대로 종교개혁기념일을 지키지 못하여 축제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 곡의 테마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에서 가져왔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585장이 그것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찬송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를 모르면, 이단아가 되기 쉽다.)

 

멘델스존의 풀 네임은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Felix Mendelssohn Bartholdy, 3 February 1809 – 4 November 1847, 38살에 요절)이다. 우리는 흔히 줄여서 멘델스존이라고 부른다. 멘델스존은 유대계 독일인(Jewish Germany)이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유대교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유명한 철학자로, 그 당시 이매뉴엘 칸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그 당시 유명한 은행장(현재 도이치방크의 전신, 히틀러 시절 빼앗김)이었다. 그래서 멘델스존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자랐다.

 

우리가 알다시피, 독일은 종교개혁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개신교(Protestants)가 발달된 곳이다. 그래서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아들 펠릭스의 앞날을 위하여,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다. 그래서 그는 멘델스존 위에 Bartholdy라는 성을 붙인다. 이것은 그의 가문이 더 이상 유대교인이 아니고 개신교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패밀리 네임(Family Name)이었다.

 

유대인인 멘델스존이 종교개혁 300주년을 맞아 축제 때 연주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이라는 심포니를 작곡한 이면에는 그러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멘델스존의 <종교개혁> 심포니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무엇인가, 스토리를 알면 마음이 짠한 법이다. 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알아야, 이해도 하는 법이다.)

 

멘델스존은 이름도 개신교 식으로 바꾸고, 개신교 종교개혁을 기념하며, 자신이 개신교인인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살았다. 누구보다도 독일인이었고, 누구보다도 개신교인이었던 멘델스존, 그러나, 나치 정권이 들어서고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며 유대인 말살 정책을 펼쳤을 때 멘델스존의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히틀러는 멘델스존보다 4년 늦게 태어난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를 사랑했다. 그는 바그너야 말로 독일인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음악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바그너의 음악을 우상화시켰고,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음악은 마구마구 짓밟았다. 히틀러는 박물관에 보관된 멘델스존의 모든 유품과 악보를 불태웠고,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멘델스존을 기념해서 게반트하우스 근처에 세운 동상도 철거시켰다. 한 사람의 미치광이 때문에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바그너는 생전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도망 다녔고, 멘델스존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추앙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좋은 배경을 바탕으로 빛을 못 보고 있던 수많은 음악가들을 발굴했다.

 

그 중 대표적인 두 사람이 바흐와 쇼팽이다. 멘델스존의 노력이 없었다면 바흐는 우리가 현재 인정하듯음악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쇼팽은 음악계 주변을 전전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멘델스존의 노력 덕분에 바흐와 쇼팽은 지금 우리에게 최고의 음악가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운명은 참 짓궂다. (나는 운명이라는 말보다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하나님은 참으로 짓궂으시다.) 왜냐하면, 인간사에서 가장 행복한 날인 결혼식에 히틀러에 의해 명암이 갈렸던 바그너와 멘델스존을 만나게 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결혼식 때 전통적으로, 두 곡의 결혼행진곡이 연주되는데, 신부입장 할 때 연주되는 곡은 바그너의 곡이고, 신랑신부 퇴장 때 연주되는 곡은 멘델스존의 곡이다. 바그너의 곡은 그의 오페라로엔그린’ 3막에 나오는 혼배합장곡이고, 멘델스존의 곡은 그가 17세에 작곡한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중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곡이다.

 

루터가 종교개혁 할 당시 근거가 되었던 성경구절은 로마서 1 17절의 말씀이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7). 종교개혁 당시의 중세 유럽의 사회적 상황을 몇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 당시는 구원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그들을 지배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소비에 대한 과도한 욕망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 나는 구원받았다. 고로 존재한다.)

 

루터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의 의였다.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루터(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다가서려고 엄청난 종교적 짐을 졌다. 일례로, 고해성사를 하루에도 수십 번 했고,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난 지은 죄를 고해하기 위하여 다시 고해성사실로 향하는 등, 의로움을 인정 받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고행(금식을 밥 먹듯이 했다)을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만 더 드러날 뿐이었다. 루터는 매일 좌절했다. 그러던 중,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하다 이 구절을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복음에 나타난 의를 믿으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구나!’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한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만약, 루터가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직까지도 종교적 짐을 지우느라 헛된 고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루터가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구원의 길에 대한 또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11:28-30).

 

오늘 설교 제목은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이다. 이것은 라틴어인데, 우리 나라 말로 옮기면,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라는 뜻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수업부터 빡빡하게 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하며 첫 수업을 맞는데, 첫 수업부터 빡빡하게 하면 수업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다. 그런데, 긴장하고 첫 수업에 들어 갔는데, 과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한 뒤,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 온다.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휴강이라는 말을 들으면 뜻밖에 잉여의 시간이 생긴다. 우리는 잉여의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하는가? 오랜만에 친구(부모님)에게 전화도 하고, 시장에도 가 보고, 길을 가다 껌을 파는 할머니의 껌도 하나 사드리고, 풀 밭에 누워 봄날(가을날)의 기운도 느껴보고, 이렇지 않을까?

 

극빈 3

ㅡ 저 들판에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나는 이르렀네

귀 떨어진 밥그릇 하나 들고

빛을 걸식하였네

풀치를 말리듯 내 옷을 말렸네

알몸으로 누워 있으면

매미 허물 같은 한나절이 열 달 같았네

배 속의 아가처럼 귀도 눈도 새로이 열렸네

함께 오마 하는 당신에겐 저 들판을 빌려주리

 

구원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이 자기 구원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중세에는 지나가는 걸인에게 반드시 동정을 베풀었는데, 지나가는 걸인에게 동정을 베푼 것이 그들에게 의가 되어서, 그것이 자신들의 구원에 가산점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전문 거지(homless)’ 그룹도 등장했다. 그 전문 거지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들이 부자의 구원의 통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자들은 걸인들의 존재를 고마워했다. 걸인들이 있어 자신들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되 안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잉여의 시간이 생기면, 우리는 마음을 풀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첫 수업은 휴강이라는 데 바보처럼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거나, 첫 수업을 휴강했다고 선생님을 비난하는 사람은 바보거나 인생을 잘못 사는 거다. 잉여의 시간이 생기면, 그것에 감사하며 그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루터는 구원에 있어,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복음을 외쳤다. 이것은 구원에 대하여 혁명적인 일이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이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 이처럼 불가능한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구원을 우리에게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첫 수업은 휴강이다. 은혜다. 그러니, 나가서 공중에 나는 새도 좀 보고, 들판에 핀 꽃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건네 보고, 오랜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도 걸어보고, 하늘도 좀 바라보고, 밤하늘의 별도 들여다보고, 무엇보다 나의 주변 사람들, 또는 나의 주변의 자연(동물, 식물, , 하늘, 바다)이 겪고 있는 고통도 들여다보라. 잉여의 시간이 사랑으로 꽃피우게 하라.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삶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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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