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10. 26. 09:47

풍성한 하나님, 풍성한 인생

(시편 23편)


23편은 성경 중 가장 인기 있는 구절이다. 교회를 조금 오래 다닌 사람 치고 시편 23편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빼어난 시적 표현을 담고 있고, 짧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용 면에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구원의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3Ps로 표현하고 싶다. Provision(공급), Protection(보호), 그리고 Presence(함께함, 동행)이 그것이다. 시편 23편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드러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고, 우리를 위험(죄와 악)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분이고, 언제든지, 어디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다윗은 이것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양이다. 이것은 언제까지나 메타포(비유)이다. 메타포는 어떠한 중요한 요소를 말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빌려올 뿐이지, 그 비유의 대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가령, 실제로 목자와 양의 관계는 시편 23편에서 비유되고 있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벗어난 현실이 있다. 실제로 목자가 양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과 함께 다니는 것은 양에게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함이다. 목자를 양을 잘 키워서, 양의 젖이라든지 털, 또는 고기를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에게 비유되고 있는 목자와 양의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케 하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돌보시는 것이다. 사랑에는 어떤 목적이 없다.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로 그 풍성함을 통해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신다. 이것은 생명의 나눔이다. 그야말로, 잔이 넘치는 것이다. 그분에게는 인색함이라는 것이 없다. 그분에게는 억지로라는 것이 없다. 그분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그분에게는 흘러 넘치는 풍성함이 있을 따름이다.

 

풍성하지 못하면 나 자신도 목마를 뿐더러, 다른 이들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줄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은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정의와 사랑의 삶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 아는 일은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3Ps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길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3Ps를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존재)를 풍성하게 해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서로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서로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인륜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악한 이유, 세상을 살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인생(존재, 생명)을 위해서 서로 공급하고 보호하고 함께 하지 못하고, 자기 또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만의 생존을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헤치며 남을 소외시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는 생존이 도덕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렇게 잔인한 것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한다. 구약의 열왕기하(왕하 6:28)나 예레미야애가(애가 4:10)에서 보듯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자식을 삶아 먹는 일까지 벌인다. 아니, 이보다 더한 짓도 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악마의 노예로 산다.

12.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아는 것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우리의 삶도 거룩해지기 위함이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분이고,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자기 자신의 안위만 위했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언약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의 성군이 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경험한 뒤, 그도 하나님처럼 자기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적의 위험(특별히 블레셋)으로부터 보호하고, 백성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이다.

 

풍성한 하나님을 경험하면, 나의 인생이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나의 풍성함을 나누는 인생을 반드시 살게 된다. 풍성함을 축적만 하고 나누지 않는 것은 풍성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조엘 오스틴의 Prosperous Gospel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1천만불(120)짜리 호화주택에 살면서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자신처럼 살기 원한다고 말하는 복음은 도대체 어떠한 복음인가!)

 

악한 세대를 돌아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가까운 주변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인생, 생명)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함께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끼리, 우리 교회 공동체가 3Ps를 잘 하고 있는지 돌아보야 한다.

 

어떻게 보면, Provision Protection은 잘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Presence가 아닌가 싶다. 다윗은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 여기서 다윗은 자기의 평생에 선하심(Goodness)’인자하심(Lovingkindness)’이 반드시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확신하다. 이것은 선하심인자하심이 의인화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Presence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좋다,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Presence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급하고 보호하는 일은 내가 직접하거나, 다른 이가 해줄 수 있는 것이지만, Presence하는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

 

사랑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공급하고,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랑 하는 게 아니라, 결국 내 눈 앞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눈 앞에 있으려고, 상대방과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쏟고 집중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게 복이고, 그러한 관계를 하나님이 복 내려 주시고 기뻐하신다.

 

풍성한 인생은 풍성한 하나님을 닮을 때 이루어진다. 그게 거룩한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3Ps를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도 우리의 가족, 교회,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에 3Ps를 행하며 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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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