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4. 3. 5. 13:36

길갈에서의 리추얼

(여호수아 5:9-15)

 

1. 리추얼

리추얼(Ritual)은 한국 말로 의식(儀式) 또는 의례(儀禮)를 뜻한다. 리추얼은 두 가지 큰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기억(remember)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New Start)의 기능이다. 리추얼은 우리의 삶에 마디를 제공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도와준다. 그리스도교인에게 예배는 대표적인 리추얼이다. 충분한 리추얼이 없으면 새로운 시작은 불가능하다. 리추얼을 잘 하는 사람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김현관/이영주 집사님네 개 해리가 2년 전에 죽었을 때 내가 집전한 리추얼을 통해 두 분이 많은 위로를 받았고 해리를 잘 떠나 보낼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들었다. 그래서 집사님네는 리추얼을 통해 형성된 정서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반려견 아리를 데려와 잘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신태숙 권사님 댁 자녀분들도 동일한 고백을 한다. 리추얼(장례예배)을 통해서 엄마를 떠나 보내고 자녀들끼리 한동안 본인들만의 리추얼을 통해서 어머니를 추억하며 잘 떠나 보낼 수 있어 이제 어머니 없는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2. 여호수아서의 대표적인 리추얼: 길갈 리추얼

성경책 민수기 하면 떠올라야 하는 것이 가데스 바네아인 것처럼, 성경책 여호수아 하면 떠올라야 하는 것은 길갈이다. 길갈의 뜻는 “굴러갔다”, 또는 “떠나갔다”이다. 여호수아서의 대표적인 리추얼은 길갈의 리추얼이다. 길갈의 리추얼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아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길갈의 리추얼은 지난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광야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이제 시작된 가나안 땅에서의 삶으로 새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길갈의 리추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자.

 

3. 요단강 도하 후 이스라엘이 행한 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안으로 들어가자 요단강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고 바닥을 드러낸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순조롭게 건널 수 있었다. 이것은 약속의 성취다. 출애굽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순간이다.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은 성스럽고 순조로웠다. 이들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서서 행한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스라엘은 요단강 바닥에서 열 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 강변 서쪽에 기념물로 쌓아 놓는다. 이것은 징표의 역할을 한다. 후일에 자손들이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해주고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이스라엘은 할례를 시행한다. 출애굽한 백성 중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지만,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태어난 백성 중 남자들은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요단강을 건넌 후 이들은 할례를 시행한다.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할례를 시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수없이 많은 적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일촉즉발 상황에서 전투에 임해야 할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 것은 굉장히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었다. 할례를 받아 회복하는 동안 적군이 쳐들어 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과 그의 가족은 세겜 땅에 정착하는데, 그곳에서 나쁜 일이 발생한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의 히위 족속의 족장 하몰의 아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디나와 같은 어머니(레아) 밑에서 태어났기에 분노를 참지 못한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디나를 아내로 달라는 하몰의 요청에 응하는 척하면서, 그러면, 히위 족속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 요청에 응하겠다고 꾀를 낸다. 그 딜은 받아들여졌고, 히위 족속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다. 바로 그때, 할례를 받고 회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히위 족속의 성읍에 기습하여 들어가 모든 남자를 죽인다. 이만큼, 할례 받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요단강 도하 후, 전열을 가다듬은 것이 아니라, 할례를 시행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가나안 땅에서 시작될 전쟁을 맡긴다는 뜻이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신앙이다. 우리가 주일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기겠다는 결단 아닌가? 삶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들 앞에서 주눅들거나 낙심하거나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겠다는 신앙의 고백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담겨야 한다.

 

4. 길갈의 리추얼을 통해 발생한 첫 번째 역사

길갈에서의 리추얼이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통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하나님은 그 할례를 통해 애굽의 수치를 그들에게서 떠나게 하셨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이 길갈이다.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 ‘수치를 떠나가게 하셨다.’는 뜻이다. 얼마나 위대하고 은혜로운 이름인가! 길갈! 꼭 기억하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제시대의 수치가 아직까지 한국인들의 삶에서 굴러가지 못하고 떠나가지 못한 것에 있다. 아직까지도 친일논쟁을 벌이는 것은 국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수치다. 만약, 해방 후에, 적절한 리추얼을 통해 국가의 수치를 온전히 굴려보내고 떠나보냈다면 한국이 아직까지 친일문제로 시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 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애굽의 수치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싸우는 일이 없다. 이스라엘 역사에 여러 다툼이 있었지만, 적어도 애굽의 수치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었다. 왜 그랬는가? 바로 길갈에서 할례의 리추얼을 통해 애굽의 수치를 굴려보내고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5. 길갈의 리추얼을 통해서 발생한 두 번째 역사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 평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켰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통해 유월절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부터 만나가 그쳤다. 광야에서는 긴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나라는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자기의 힘으로 먹거리를 구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일어서도록 도우신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어린 아이의 신앙이었지만, 이제 가나안 땅에서의 신앙은 어른의 신앙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을 이끌어 나갈 줄 알아야 한다.

 

6. 길갈의 리추얼을 통해서 발생한 세 번째 역사

애굽의 수치를 굴려보내주시고(떠나보내 주시고), 만나를 그쳐 이제 자립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정복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여호수아 5장 13절 이하의 짧은 에피소드는 강력한 인상을 준다.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칼을 손에 쥔 한 사람이 여호수아의 눈에 들어왔다. 여호수아는 그 사람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대답한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라고 보내신 천사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명백한 징표였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그곳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리고 전쟁을 시작으로 이제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나고 얼마나 든든했겠나. 두려움이 눈 녹듯 물러가고 그의 마음에는 용기가 솟아올랐을 것이다.

 

7. 리추얼의 중요성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 길갈에서 발생한 이 모든 감격스러운 일들은 리추얼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리추얼은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우리가 ‘예배’라는 형태로 드리는 리추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우리가 정기적으로 행하는 리추얼에 삶의 무게를 실으라.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리추얼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 것처럼, 새롭게 시작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리추얼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 삶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속상한 일들, 삶을 가로막고 있는 일들,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리추얼을 통해서 모두 굴려보내고 떠나보내라. 그래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공적인 리추얼도 있지만, 각자 삶 속에서 나만 아는 소소한 리추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답답하고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거든 삶 속에서 자신만의 리추얼을 만들어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해 보라. 리추얼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통로이다. 리추얼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멋지고 활기찬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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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