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4. 3. 5. 13:32

연약궤를 멘 제사장들

(여호수아 3:7-17)

 

1.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민수기(광야에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견한다. 야곱 가족들의 애굽 이주 이후 430년 동안 가나안 땅에 가보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그 땅이 어떠한 땅인지 알지 못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등장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성경은 신명기를 지나, 여호수아서에 이르러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정탐꾼을 파견하는 이야기를 또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 때와는 달리 두 명만 파견한다. 이것은 명백히 여호수아와 갈렙 연상시키는 정탐꾼 파견 사건이다. 여러고 성에 정탐 다녀온 두 정탐꾼의 보고는 그것을 확증해 준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에 파견되었던 정탐꾼 두명의 보고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24)

 

여리고 성에 파견되었던 정탐꾼의 이야기는 광야를 지나면서 믿음이 성장한 이스라엘을 보여준다. 이제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요단강 앞에서 섰다. 감격의 순간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생각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요단강 도하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 속에서는 지난 40년간의 광야생활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2. 요단강을 건너는 역사적 순간

요단강 도하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수 3:5). 그리고 여호수아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사장들에게 명령한다.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가라”(수 3:6).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언약궤를 메고 앞서 간다. 그리고 요단 물 가에 이르러서 거기에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간다.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갈 때에, 여호수아는 다시 한 번 말씀을 선포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족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수 3:10)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가나안 땅에서의 삶의 여정을 앞두고, 그리고 정복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얼마나 두려웠겠나.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반드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정복전쟁이라는 용어가 많이 폭력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을 정당화시켜 주는 용어가 절대 아니다. 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의롭지 못한 세상 질서를 몰아내는, 구원행위에 대한 강력한 비유적 용어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라합의 해방일지’를 통해서 보았다.

 

3.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간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이 온전히 끊어졌다. 그래서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기 좋게 바닥이 드러났다. 물이 끊겨 마른 땅이 된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갔다. 여기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역할을 주목해 보자.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았다.[1] 이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이 된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리스도인은 연약궤를 멘 제사장이다.

 

4. 그리스도인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성취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메고 있는 것은 언약궤,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의 은혜와 복을 받고 누리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제사장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은혜와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언약궤를 메고 제일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는 마인트셋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신명기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동편에서 먼저 땅을 분배 받지만, 그들이 가나안 땅에 함께 들어가 정복전쟁을 할 때 선봉에 서서 모든 이스라엘이 약속의 성취를 이룰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5.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으로 산다는 뜻이다. 교회 공동체로서 인류를 위한 봉사와 섬김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는 솔선수범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입으면 저절로 되는 일이다. 히브리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봉사와 섬김, 즉 구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이다. 이 험한 세상에 이러한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의 희망이다.

 

6. 마이드셋의 변화

요단강 도하 사건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그리고 입성하면서 이스라엘의 마인드셋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의 마인드와 광야에서 40년 유리할 때의 마인드가 같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이스라엘의 마인드는 애굽에서 살 때와 광야에서 살 때의 마인드와 같을 수 없다. 우리도 그렇다. 팬데믹 이전의 마인드와 팬데믹 동안의 마인드는 같지 않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 이후를 살면서 팬데믹 동안의 마인드로 살 수 없다. 무엇보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여호수아의 말씀처럼,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마인드로 우리는 전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처럼 섬길 때, 우리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처럼 섬길 때,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우리 지역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함께,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요단강을 건너가자!



[1] 성경의 이스라엘과 지금 역사의 이스라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신앙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이스라엘이지만, 지금 역사의 이스라엘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신앙의 보편성을 성취해야 할 개별적인 나라에 불과하다. 보편성의 개념과 개별성의 개념을 혼동하면 안된다. 더불어 성경의 이스라엘과 지금 역사의 이스라엘 둘 사이에 있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잘 가려서 성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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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