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1. 4. 08:35

내가 살 집

(삼하 7:1-12)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사랑은 아가서에 등장하는 여인의 마음 같다. 어떤 대상에 대한 열망과 사모는 아름다움을 낳는다.

 

본문 앞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이야기이다.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며 찬양했다. 이 일을 두고 다윗의 부인 미갈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 일로 인해 미갈은 평생 자식을 갖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는 일은 귀한 일이다. 그러한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면 안된다. 미갈이 다윗과 함께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며 찬양했다면 미갈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아마도, 미갈에게서 난 자식이 다윗을 이어 왕위를 굳건하게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윗의 열심에 대한 미갈의 비웃음 때문이었다. 안타깝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1). 공간적 배경은 예루살렘이다. 이 말은 예루살렘에 평화가 깃들었다는 뜻이다. 참 감격스러운 말이다. 예루살렘에 평화가 깃든 적이 있었는가?

 

지금도 예루살렘은 평화롭지 못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유엔 회원국들이 모여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지위 결정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며 찬반 투표를 했고, 압도적인 표차이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을 거부했다. 향후 국제정세가 어떻게 될지, 우려된다.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를 보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예루살렘은 고대로부터 누구나 탐내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곳을 놓아두고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예루살렘은 주인 없는 땅이었다.

 

지금까지도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그만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뜻)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세운 장본인이 바로 다윗이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때 다윗은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렸으면 좋겠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한 이유는 양심의 가책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장막(텐트)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 나단을 불러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런데, 이야기의 전개를 보면, 다윗의 생각이 그렇게 좋은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이런 질문부터 해보자. 하나님께 집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들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당 건물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편재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편재성이란, 하나님은 어디에든 임재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전, 또는 교회로 하나님의 임재를 가두어 놓으면, 사람들은 성전, 또는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섬길 뿐, 그 바깥 삶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어놓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러한 잘못과 착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표적인 예를 아모스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5:21-23).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며 여호와께 집을 지어드려야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렇게 되물으신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5). 만약 하나님이 다윗의 계획을 긍정하셨다면, 이렇게 되묻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다윗이 계획을 칭찬하셨을 것이다. “아이고, 고맙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던 날부터 이제까지 건축된 성전에 거하지 않고 장막과 성막 안에 거했던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느 지파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다윗 같은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본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윗이 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 또는 자책감, 그리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집을 짓는 것은 다윗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사무엘하 7장은 소위, 다윗 언약이 세워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윗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언약에 대한 신탁을 내리시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신다. 다윗의 집, 다윗의 나라, 그리고 다윗의 왕위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가지를 영원히 보전하시고, 영원히 견고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다윗 언약이 중요한 이유는 이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림절 네번째 주일을 맞아, 사무엘하의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하는 말씀은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 1장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리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0-33).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지어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어주시는 집은 이런 집이다.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삼하 7:11). 이러한 집을 지어주시겠다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었더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으면, 그곳에서 평안히 쉬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영원하고 견고한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다윗에게 주신 약속,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는데, 그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은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어떠한 집에 살고 있는가? 내가 사는 집은 내가 내 힘으로 지은 백향목 집이 아니라, 내가 살 집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진 영원하고 견고한 집이다. 내가 살 집은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지 못하는 곳이다.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평안히 쉴 집을 건축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하고 견고한 집을 받아들자. 우리 모두 그 집에서 평화롭게 영원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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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