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6. 4. 11. 11:02

눈감고 눈뜨기

(행 9:1-6 / 21:15-17)


우리는 예수의 부활 이후의 삶을 산다. 부활 이전의 삶과 부활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성령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세상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지난 주에 말했다.

 

잠시 눈을 감아보자. 다시 떠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아무 것도 안 보이는가? 이번에 다시 눈을 감아보자. 다시 떠보자. 이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예수님이 보이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오늘 설교를 마쳐도 된다.

 

어디에 눈뜨고 있었는가? 대개 우리는 자기 일에 눈 뜨고 산다. 대개 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먹고 사느라 바쁘다. 다른 곳을 돌아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라고 위안을 한다.

 

1년 동안 한 권의 책 이상 읽은 비율을 따지는 것을 독서율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독서율은 74.4%(2013년 기준)이다. 이것은 15세 이상의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성인을 기준으로 하면, 독서율은 65% 정도다. 다른 말로 하면, 성인 10명 중, 3-4명 정도는 일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은 책을 잘 안 읽는다. 그런데, 서점가에서 유독 잘 팔리는 책이 있다. 바로 자기계발서이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남들보다 더 뛰어난 그 무엇인가를 계발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줄기 차게 읽는다. 자기계발서의 기본 철학은 자기 자신을 들들 볶아서 남들보다 한 수 위의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되자이다. 그러면서, 성공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 자기 의를 부추긴다.

 

자기 의라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기 구원을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 구원을 실현한 만큼 자신이 행복할 수 있으며, 자유로울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자기 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다.

 

그런데, 자기 의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특별히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신기루같은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자기 의를 통한 자기 구원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몇몇 성공한 사람들을 토대로 권세 잡은 자들이 일반대중에게 던져주는 떡밥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속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의는 한마디로 헛일이다. 왜 그런가? 그것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소위 영적인 일이라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특별히 신약성경)은 이 점을 줄기차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르고, 아직도 현실 생활에서처럼 신앙생활에서도 자기 의를 쌓는 데 여념이 없다.

 

자기 의가 헛일이고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각 나라에서 통용되는 돈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에서는 원화를 쓰고, 미국에서는 달러화를 쓴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이 쓰는 돈이 다르다. 한국에서 원화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을 미국에서 쓸 수 없다.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우리가 모아야 하는 것은 달러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미국에 살기를 바라면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원화를 모으기만 한다면, 그것은 헛일이다. 원화를 아무리 많이 싸 짊어지고 미국으로 와도 그것을 달러로 바꾸지 못하면, 그가 모은 원화는 종이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헛일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이다. 예수 만난 후에,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는 사울은 자기 의를 쌓는 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사람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고(혈통이 좋다),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으며(학식이 좋다), 바리새인이었다(권력이 있다). 게다가 그는 열정이 넘쳐났다. 혈통 좋고, 학식 있고, 권력이 있는 자에게 열정이 넘쳐나면, 그가 어떠한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다.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역량을 나사렛 예수 일당들을 때려 잡는 데 썼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일을 하는 중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던 예수 일당을 모두 때려 잡고, 지방에 숨어 있는 예수 일당을 때려 잡기 위해 대제사장(공의회)에게 공식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의기양양하게 길을 떠났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굳게 믿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의를 쌓아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 받은 백성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에게 참으로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자신에게 비추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눈이 먼다(눈을 감게 된다). 그 상태에서 그가 들은 음성은 이런 것이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4). 이 음성을 들은 사울은 질문한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가 들은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5). 이 사건을 겪은 이후에, 사울은 자신이 행하던 헛일자기 의를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한다.

 

지금 우리는 부활절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 사울의 이 사건도 예수의 부활이 있은 후에 벌어진 일이다. ‘자기 의를 쌓기에 열심이던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데, 우리에게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있는가? 먹고 살기에 바빠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가? 그러한 일은 먹고 살기 바쁜데 방해가 되는 쓸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부활의 사건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눈감기의 순간이 꼭 있어야 한다. 이전의 것에 대하여 눈을 감지 못하면, 새로운 것에 대하여 눈을 뜰 수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전 것을 보고 있으면서, 예수의 부활로 인해 새로워진 세상을 보기 원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의 부활로 인해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눈을 떠야 한다.

 

사울을 보라. 눈감기 전과 눈감았다 떴을 때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 눈감기 전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그 일에 아주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에게 구원은 어떻게 왔는가? 눈을 감았다 떠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게 되었을 때에 왔다. 그는 눈을 뜬 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열심이 그도 구원하고, 다른 이도 구원했다.

 

오늘 또다른 본문인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 (특히 베드로)도 마찬가지다. 눈감기 전과 눈을 떴을 때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 눈감기 전에 그는 그물을 던져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21:3). 헛일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눈을 감고 헛일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히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5-6).

 

사울이 자기 의를 쌓는 헛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도로 거듭나 참된 구원을 실현한 것, 그리고 제자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 헛일을 버리고 수많은 고기를 잡게 되는 일이 어느 때 발생하는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될 때이다.

 

우리는 어디에 눈을 뜨고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헛일이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헛일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헛일에 대하여 눈을 감으라. 그리고, 나에게 참된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눈을 뜨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면,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구원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눈을 뜬 후의 삶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목양이라는 것이다. 대개 목양은 목사들이 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목양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 베드로와 예수께서는 이러한 대화를 나누신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21:15-17). 예수께서는 이것을 세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이것을 세 번 반복했다는 것은 목양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기 위함이다.

 

우리는 양을 잡아 먹는 자들이 아니라, 양을 먹이는 자들이다. 아직도 눈감고 눈뜨기를 못한 자는 양을 잡아 먹으며 자기 자신을 살찌우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지만, 눈을 감았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눈을 뜬 자들은 양을 먹이는 일에 자기 자신을 헌신할 것이다.

 

여러분은 누구인가? 어디에 눈을 뜨고 있는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자기 의’, 헛일을 하는가? 양을 잡아 먹고 있는가? 아니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에게 눈을 뜨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의 양을 먹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아보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자기 의’, 헛일에 대하여 이렇게 눈을 감으라. 이제 눈을 떠보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 지금 여러분들이 눈을 떠 보고 있는 그 예수가 여러분을 구원하는 이시다. 그러니, 예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그의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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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