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10. 5. 09:32

메타노이아 트라우마 넘어서기

(민수기 21:4-9)


메타노이아(metanoia)는 헬라어인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회개(repentence)’이다.  내가 굳이 우리나라 말인 회개를 쓰지 않고, 헬라어를 쓰는 이유는 회개라는 말이 오염됐기 때문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회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언어는 역사와 컨텍스트를 가지기 때문에 그 언어가 지시하고 있는 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죄를 뉘우치는 것정도가 떠오른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를 그 정도로만 축소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메타노이아는 단순히 죄의 뉘우침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메타노이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얻게 되는 심적외상을 말한다. 사람은 외적인 손상이나 어려움을 경험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외적인 손상을 복구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의 손상을 복구하는 일이다.

 

오늘 말씀은 모세와 이스라엘이 받은 트라우마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일명 불뱀사건이다. 그들이 불뱀사건을 겪게 되는 데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그들은 출애굽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곳을 향해 가면서 계속해서 일련의 외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뱀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들이 겪은 네 가지의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미리암의 죽음 신광야 가데스에서 일어난 일

2) 므리바 물 사건 물이 없어서 원망: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기도해서 반석에서 물을 얻는 은혜를 얻지만,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면서 반석을 두 번 치는 행위를 통해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됨)

  3) 홍해로부터 다메섹에 이르는 왕의 길로 통과하지 못하게 됨: 에돔에게 정중히 부탁했으나 거절당해서, 배신감과 실망감을 안 게된다. 그들은 에돔이 이스라엘의 형제(에서의 자손)로 생각하고 당연히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으나 거절당한다.

  4) 아론의 죽음: 호르산에 이르러 초대 대제사장이요 모세의 평생의 동역자이자 친형인 아론이 죽는다.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 30일 동안 애곡한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트라우마를 안고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고자 했는데, 길이 너무 험해서 그것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극심한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이 상하고, 지쳐 있었다. 계속적인 실패와 죽음의 경험으로 인해, 고개가 숙여진 상황이었다.

 

<트라우마 한국사회>라는 책을 보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1) 우월감 트라우마: 사람대접 못받을까봐 외향에 치중하는 사회

2) 분단 트라우마: 빨갱이 전략, 어떤 모략에 걸릴지 몰라 두려워하는 사회

3) 변방 트라우마: 권력의 이익으로부터 소외되어 차별 받을까봐 몸사리는 사회

 

여기에, 세대별 트라우마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1940,50년대 생: 좌절 트라우마 (너는 이 아버지처럼 살지 마라, 국제시장)

2) 1960년대생: 미완성 트라우마 (내 욕심만 좇느라 민주와 정의를 후퇴시겼구나)

3) 1970년대생: 혼돈 트라우마 세계화시대 – (신자유주의 체제내에서는 나의 개인적 꿈(소망)이 실현될 수 없다)

4) 1980년대생: 공포 트라우마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걱정 낭만을 잃은 세대)

 

이스라엘은 에돔의 비협조로 인해 왕의 대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험한 길을 통과해야 하는 슬픈 현실을 맞닥뜨렸다. 그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이 상하니라 (the people grew impatient on the way).”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이렇게 성난 함성을 질렀다. “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5).

 

이것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표출이다. 그들은 절망했고, 불안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것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한다. 트라우마가 가져다 주는 절망과 불안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불뱀의 등장이다. 불뱀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목숨을 잃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음악이 있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씌어진 소설이 있다. 음악은 작곡가 라벨이 지은 곡인데, 그는 '옛 스페인의 궁전에서 작은 왕녀가 춤을 췄을것 같은 파반느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박민규가 지은 것인데, 제목은 라벨의 음악에서 따왔고, 그의 소설 책 표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이란 그림에서 추녀 시녀에게 조명을 비추고 있다. 

 

박민규는 그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한 트라우마에 대하여 고발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심한 트라우마는 한 마디로, ‘인정욕구이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부러움과 부끄러움속에서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인정 받지 못한 자는 사회의 낙오자로 여겨져 도태되고 목숨을 잃는다. 20대 사망 원인의 제 1 순위는 자살이다.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하고, 일년에 14,000명 정도가 자살한다.


불뱀의 등장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메타노이아였다. 메타노이아는 죄에 대하여 단순히 용서를 갈구하는 마음이 아니다. 죄 지은 것에 대하여 단순히 용서만 갈구하면 뭐하는가? 다음에 또 똑 같은 죄를 짓게 될텐데. 메타노이아는 현재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이 현실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길은 반드시 있다. 다른 인생, 너머의 인생이 반드시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부활이라 부른다. 메타노이아란 현재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는 트라우마를 넘어서서 다른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삶의 도약을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에서 본다. 탕자는 어느 순간 돼지같이 비천한 삶에서 괴로워하다가, 아버지를 기억하고, 현재 자신의 삶을 버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탕자는 메타노이아를 통해 새로운 삶,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삶이 있다! 불평과 원망, 트라우마 속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나가는 삶이 아닌, 생명을 얻는 삶이 그들에게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장대에 높이 걸려 있는 놋뱀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일이다. 장대를 보려면, 필연적으로 고개를 들어야 한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쳐다본 즉 모두 살더라!”(8, 9).

 

여러분의 고개를 숙이게 하는 절망, 불안, 인정욕구 등, 그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이 현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고통, 어려움이 전부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놋뱀’, 즉 주님이 준비하신 또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다.

 

트라우마는 우리를 두려움에 꼼짝 못하게 가두지만, 메타노이아는 그 두려움을 깨뜨린다. 현재 여러분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이 있다면, 눈을 들어 놋뱀(십자가)을 바라보라. 그리고 믿음을 가지라. 주께서 반드시 살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고개 들고, 어깨 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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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