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6. 12. 16:32

빛은 어둠을 이긴다 

(요한복음 8 12-20)


이스라엘에는 7대 절기(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가 있다. 유대인의 절기는 유월절에서 시작해서, 초막절에 끝난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 있고, 오순절(칠칠절)은 곡식의 첫 수확과 관련 있고, 초막절은 광야에서 장막에 거한 것을 기념하며 곡식 추수를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절기는 기본적으로, 감사의 축제이다. 눈을 떠서 제대로 보면, 이 세상은 감사할 일 천지다. 불평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늘 말씀의 시간적 배경은 초막절이다. 초막절을 맞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가셨고, 그곳에서 유대인 지도자들과 대결을 펼치며 가르침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에고 에이미의 형식을 빌어 세상에 드러내시는데, 오늘은 특별히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예수님이 뜬금없이 자기를 빛으로 소개한 것은 아니다. 초막절 축제 때 행하던 빛의 의식에 빗대서 자신을 빛으로 소개한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초막절 축제 때 젊은 제사장은 사다리에 올라 여인의 뜰에 있던 4개의 황금 촛대에 불을 붙였다. 이 빛은 온 예루살렘을 비춘다는 것을 상징했다. 시편 27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스라엘에 광야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대적자의 손에서 건져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현현하실 때 빛으로 나타나신다. 빛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특별히, 이사야서 60 19-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성경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특별히, 빛이라는 상징은 매우 강력한 상징이다. 요한복음 1장은 빛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다. 특별히 요한복음 1 5절 말씀은 이렇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과 어둠이 대비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어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빛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빛과 어둠이라는 상징을 통한 성경의 메시지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에 오기 전 겨울의 끝자락, 그러니까, 2003 2월 어느 날, 나는 사촌형과 함께 설악산 등산을 했다. 우리가 설악산 등산을 하기로 마음 먹는 날은 대설주의보로 인해 흰 눈이 온 산을 덮었던 때였다. 산행금지가 풀린 시간은 오전 11시였고, 사촌형과 나는 계획대로 설악산을 올랐다. 오색 약수터 쪽 등산로를 이용하여, 죽을 고생을 하며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올랐는데, 그때는 이미 시간이 오후 5 30분 경이었다. 너무 추워서, 정상에 5분도 못 머물러 있고, 곧바로 하산 했는데, 산을 내려오면서 그만 해가 지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은 그날 반달이 하늘에 떴다. 설악산 꼭대기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비추는 반달의 빛 때문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빛의 위력은 대단하다. 생명을 살린다.

 

위에서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도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에서 는 애굽을 의미하고, ‘은 바벨론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질곡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은 이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주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힘 센 애굽에 붙었다, 더 힘 센 바벨론에 붙었다 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애굽바벨론을 빛으로 여기며,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서 고된 삶을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라!” 빛이 되어 줄줄 알았던 애굽과 바벨론은 이스라엘에게 빛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빛은 그들을 괴롭히고 멸망시켰다. , 그것은 참빛이 아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빛이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슬픔의 날을 끝내실 수 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다!”

 

요한복음 1 5절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깨닫지 못하더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카타람바노이다. 이 말은 붙잡다, 깨닫다, 이기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번역은 이 구절을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 어둠은 빛을 붙잡지 못한다.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한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과 어둠은 어울릴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초막절에 세상을 비추는 등불에 빗대어,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요한복음 기자가 예수님을 빛으로 증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갈망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실 때 빛으로 오시는데, 빛으로 오신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은 언제나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 슬픔의 날이 물러가고, 기쁨의 날이 온다. 그 기쁨이 지금 이곳에 임했다. 왜냐하면, 빛이신 예수님이 바로 이곳에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이었던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하다. 어둠은 빛을 붙잡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빛은 누구(무엇)인가? 애굽인가? 바벨론인가? 우리에게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인 것이 깨달아지는 자에게는 구원의 빛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마음에 붙들고, 어둠을 이기며 살 것이다. 빛은 어둠을 이긴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빛인 것을 믿고 의지한다면, 이 세상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빛은 어둠을 이긴다. 빛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구원의 빛을 날마다 비추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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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