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1. 23. 05:37

선술집

 

자그마한 선술집에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모인 사람들

이들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며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그 중 진한 남부 사투리를 쓰는 한 사람은

안면이 있는 배관공이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자주 본 사람처럼 인사를 건넨다

일터가 아닌 쉼터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써빙 보는 여인네는

낯에는 토이스러스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렇게 선술집에서 일한다고 한다

밤낮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삶의 고단함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난다

병색이 짙은 한 여인은

사람들과 당구를 치면서 까르르 웃는다

불치병에 걸린 이 여인은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로 살아간다고 한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이 여인은

이렇게 밤마다 선술집에 와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고 한다

이 여인은 자동차가 없단다

그래서 선술집 친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 여인에게 차편을 제공한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마음은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들보다

씀씀이가 좋은 것 같다

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친구가

목사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들에게는 여기가 교회야

그 순간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은 찬송으로 화하고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기도 소리로 화한다

그래 적어도

목사인 내가 여기에 와서 이들과 삶을 나누는 이 순간만은

선술집이 교회로 화할 수 있지 않을까?

선술집 성도들과 삶을 나누며 마신 칵테일 한 잔이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지금 술에 취해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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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