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2. 10. 29. 03:43

2012 10 28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에베소서 5:15-21

제목: 성령에 취하라

 

오늘 말씀 보면 술 이야기가 나옵니다. “술 취하지 말아라.” 그와 대비해서 성령에 취하라는 말씀을 합니다. 술이라는 것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술 마셔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한국 교회 윤리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술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앙과도 어떠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는 왜 이렇게 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지에 대한 것을 알고 나면, ‘, 그래서 그렇구나’, 뭔가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술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성령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모여 예배 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처음 받을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술 취했다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같은 곳에서도 술 이야기를 하면서 성령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옛날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술 신(디오니소스)의 영감을 받거나, 영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술에 취하면 디오니소스의 영감을 얻을 수 있고, 디오니소스의 능력을 행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신적인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신적인 존재에 기대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디오니소스가 어떤 신입니까?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입니다. 그는 포도주의 신으로 포도경작법을 널리 전파시켰습니다. 디오니소스는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신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구원의 신, 생명력의 신, 잔인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도취와 쾌락의 신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를 욕망합니다. 그래서 신적인 존재에 신접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시대는 고대 사회처럼 미신적으로 신접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에 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돈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 신의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고자 자꾸 돈과 신접하려고 한다. 그래서 돈과 신접하기 위해 별 짓을 다 합니다.

 

최근에 공모자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 무리들이 짜고 어떠한 사람들을 유인해서 공해 상이나, 중국의 한 병원에서 납치한 사람의 장기를 꺼낸 뒤, 그 시신은 콘크리트를 발라서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장기는 고가게 팔아 먹는 내용을 다룬 영화입니다. 실제로 인육을 공급하기 위해서, 그리고 장기를 팔아 먹기 위해서 사람을 납치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우리 삶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신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신접하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합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고대 신비 종교가 그들 예배 시간에 성행위를 했다는 것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 행위가 굉장히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돈에 신접하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심각한지. 눈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고대 신비 종교에서는 예배 시간에 성행위를 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신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신의 능력을, 그렇게 함으로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행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생각을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야 왜 그들이 그렇게 했지는지를 알고, 그것을 보면서 왜 성경이 그것들에 대해서 언급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는 이방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것에 빗대어서, 그것과는 대조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술 취하는 것을 통해서(신접해서) 디오니소스의 신적인 능력을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을 통해서 성령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너희들이 술에 취하듯이 성령에 취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 술 이야기가 나오는 곳에는 성령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것을 통해서 너무도 새로운 복음인 성령 취함에 대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술 취함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1. 음주는 습관화 된다( 23:21). 습관화, 이것을 중독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것이 무서운 것이죠. 무엇이든지 중독이 무서운 것입니다. 일단 어딘가에 중독되고 나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 일을 하게 됩니다. , 마약, 섹스, 게임, 성형, 심지어 운동 중독까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적당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약 같이 몸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예 손 대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2. 음주로 인해 궁핍하게 된다( 23:21). 음주 많이 하면 가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음주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주에 빠져 사는 사람은 분명히 가난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3. 술은 뇌에 영향을 미치고 구토를 일으킨다( 19:14).

4. 술은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28:7). 이사야가 술 취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비판하면서 쓴 말씀입니다.

5. 술은 속이는 것이다( 20:1). 잠시 기분을 알딸딸하게 해주어서 만사형통인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술 취하기 보다, 문제에 직면해서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푸는 것이 낫습니다. 술 먹으며 도망가지 마십시오.

6. 음주는 음란한 생각과 관련 있다( 23:33). 요즘 일어나는 성범죄의 많은 부분이 술 먹은 뒤,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술을 먹으면 실제로 성충동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7. 음주는 잘못된 행위를 하게 한다( 9:24). 노아가 술에 취해서 정신 못차리고 있을 때, 그의 아들 중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는 패역한 일이 벌어집니다.

8. 음주로 인해 망령된 말을 한다( 23:33). 술 먹으면 입에서 예쁜 말 안나옵니다.

9. 음주는 방종하는 무법자를 만든다( 31:5).

10. 음주하는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 5:21).

 

여기서 술 마시는 것 때문에 천국을 못 가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지극히 고대적인 생각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말씀인데,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에서의 맥락과 같습니다. 왜 그런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술 마시는 것이 우상숭배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좀 다릅니다. 요즘에는 술을 마시면서 우상숭배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요즘에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때문입니다. 신앙(우상숭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를 신앙(우상숭배)과 결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몸과 영혼을 맑게 하고 건강하게 지킬 의무를 위해서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신접하시려고 술 마시는 분 계십니까? ‘나는 술 마시면 영감이 떠올라!’ 그런 분들은 절대적으로 술을 끊으십시오.

 

술 취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서 술 취함과 성령 취함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술 취함이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해악을 미치는 것과는 다르게 성령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이롭게 합니다. 술 취해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리지만, 성령의 취함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구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술 취하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새사람이 무엇인지를 나열하고 있다.

1.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한다.

2. 진정한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게 된다.

3. 감사게 된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새사람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대부분 울면서 원망합니다. 감사가 어디 나옵니까. 욕만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에 취한 사람은 다릅니다. 눈이 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감사하게 됩니다.

4.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된다.

술 취한 사람은 막 나갑니다. 술 먹고 성질 난다고 파출소 들이 받고, 술 취하면 아버지 엄마도 없습니다. 그냥 누구든지 걸리면 들이 받게 됩니다. 성령에 취하면 서로 복종하게 됩니다. 성령의 눈으로 각자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을 보고, 피차 서로 복종하게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게 여기게 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 귀하게 여기면서 사는 삶, 새 사람의 삶, 성령에 취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술 취한 사람들, 그렇게 신접해서 사는 삶, 영감을 받아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지금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 같은 메시지를 줍니다. 성령에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것인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어떻게 망가지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완전히 그것과는 다르게, 성령에 취해서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가를 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해서 이 세상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매(육체의 열매)와 성령에 취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매(성령의 열매)를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519-23절에 보면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령에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성령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헷갈려 합니다. 여러분 술 취하고 싶으시면 어디를 가십니까? 술 마시는데, 술집에 가서 술 사서 마시면 됩니다. 성령에 취하고 싶으시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교회 오면 됩니까?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은 어떤 때 옵니까? 성령은 누구를 통해 옵니까? 성령은 예수님 통해 옵니다. 술 취하고 싶으면 술 사서 먹으면 되는 것처럼, 성령에 취하고 싶으면 예수님을 먹으면 됩니다. 우리가 매달, 예수님을 먹습니다. 그것이 성만찬입니다. 우리가 매일 무엇을 먹습니까? 말씀을 먹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분, 즉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에 취하고 싶으면, 예수님을 먹고 마시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헷갈려 합니다. 술에 취하는 법은 우리가 잘 알면서 성령에 취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성령, 성령, 많이 들어보기는 했는데, 성령에 취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너무 간단한데, 너무 모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됩니다. , 단순하게 얘기해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됩니다.

 

성령의 삶이라는 것이 성령 따로 있고, 예수님 따로 있고, 하나님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취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찬양을 미친 사람처럼 부르거나 고대 종교 의식에서 행했던 것처럼 미친 짓을 하면 성령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 잘 믿으면 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에 있는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면서 피차 서로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 안 빠지고, 기도 많이 하고, 찬송 열심히 부르고, 헌금 많이 내고, 이런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 잘해도, 내 안에, 그리고 상대방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지 않고, 피차 서로 복종하지 못하고 술 취하는 것을 통해서 나를 망가뜨리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면서 산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제 왜 자꾸 사도 바울이 술 얘기를 해 가면서 자꾸 성령 이야기를 하는가를 알 수 있죠? 그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취한다는 것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 술 취하지 마십시오. 단순히 술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 외에 다른 것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유익함이 얼마나 큽니까?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 담배도 잠시 우리에게는 유익을 주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다른 어떠한 것, 인삼이나 산삼, 또는 이 시대의 신인 이 가져다 줄 수 없는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을 가져다 주는 성령에 취해서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술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이것만 생각하시는 분은 오늘 설교를 잘못 들으신 겁니다.

 

술 취하지 마시고, 성령에 취하십시오. 여러분을 능히 구원할 것에 집중하며 사십시오.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참된 능력인 성령에 취해 사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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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