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4. 18. 11:31

 

하나님 나라, 인자 그리고 몸의 부활

베드로전서 3:18-19

(고난주간 토요일)

 

 

 

고난주간의 끝은 성금요일이 아니라, 성토요일이다. 교회의 전통은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죽으신 뒤 토요일에는 ‘하데스(지옥)’에 내려 가셔서 그곳에 있는 의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가 예배 시간에 공동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어로 번역된 사도신경에는 그 부분이 빠졌다. (왜 빠지게 되었는지는 오늘 말씀의 요점이 아니므로, 나중에 기회 있을 때 하기로 한다.)

 

 

 

사도신경에서 빠진 부분은 “그는 지옥에 내려가셨다(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고백이다. 우리는 흔히 죽으면 지옥에 내려간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지옥은 죄 지은 자들이 멸망 당하여 가는 곳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처럼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가셨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나, 억울하게 죽은 의인이나 죄를 짓고 영영 형벌에 처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죄인(죽은 죄인)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원해 주시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순교 직전에 개입하셔서 목숨을 살려 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 이후에 그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더 바라시는가? 물론 죽기 전에 개입하셔서 목숨을 살려 주시는 것일 것이다.

 

 

 

성경에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이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시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사자밥이나 뜨거운 불 속에서 죽을 처지에 놓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죽음을 막아 주신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보는 이나 당사자나 은혜롭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경우는 어떠한가? 구약의 인물 중, 처음 의인은 아벨이다. 신약의 인물 중, 처음 의인은 세례 요한이다. 그후, 스데반을 비롯하여 허다한 의인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죽은 자, 의로운 자의 부활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당연히 발견할 수 있는 소망이다.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성경만큼 권위를 가진 외경 중에 ‘마카베오기’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일곱 아들들이 고문을 당해 죽는 순간조차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토라를 불순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의 두 번째 아들과 세 번째 아들은 죽어가면서 그들의 고문당한 몸들이 하나님의 미래의 정의에 의해서 그들에게 되돌아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부분을 보면 이렇다.

 

 

 

(둘 째 아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못된 악마, 너는 우리를 죽여서 이 세상에 살지 못하게 하지만 이 우주의 옹(주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위해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셋째 아들이 또 고문을 당하셨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곧 혀를 내밀 뿐 아니라 용감하게 손까지 내밀면서 엄숙하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받은 이 손발을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서 내던진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손발을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받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마카베오 하권, 7장 9-11절)

 

 

 

이렇게 고난 받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이며 생명을 다시 살려 주실 거라는 강력한 희망을 가진다. 예수님의 토요일은 바로 그러한 자들의 희망을 이루신 날이다.

 

 

 

마가복음은 크게 세 가지를 주장한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2) 인자는 이미 왔다. 3) 몸의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다니엘서에서 온 용어이다. 다니엘서 7장 13-14절의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가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예부터 계신 분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이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여서, 옮겨 가지 않을 것이며,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그 인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소개한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인자에게 주어지는데,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인자(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몸의 부활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의인이 갈망하는, 모든 인류가 갈망하는 새로운 세상이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은 지옥을 포함한 온 우주에게 복된 소식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신 날’인 토요일은 고요한 침묵의 날이면서 모든 만물의 무한한 희망의 날이다. 의로운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롭게 죽은 의인을 어둠 가운데 가만히 놓아두시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찾아 오셔서 그 어둠에서, 그 죽음에서 의인을 구원해 주신다.

 

 

 

이러한 믿음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의로운 삶을 살겠는가? 우리가 믿음의 ‘허다한 무리’처럼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의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이유, 그렇게 살아도 손해 볼 것 없고, 오히려 영광인 이유는 의로운 죽임을 당하신 주님, 인자,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자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허다한 의인’의 믿음이 바로 우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