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2020. 12. 5. 13:34

[시론] 박경리의 시 유배ㅡ 유배 같은 삶

 

황사 속을 맴돌고 헤집고

이 자리

나는 책상 하나 안고 살아왔다

ㅡ 박경리의 시 유대의 한 부분, 시집 <우리들의 시간>에 수록

 

시인은 이렇게 시를 시작한다. “내 조상은 역신(逆臣)이던가 / 끝이 없는 유배”. 시인은 자신이 유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를 조상에게서 찾는 듯하다. 이것은 단순한 조상 탓이 아니다. 자기 실존에 대한 긴급한 질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유배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조상의 탓으로 돌린다.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그나마 괜찮은 거다. 어떤 이는 조상에게서조차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때, 결국 신에게 그 탓을 돌린다. “하나님이 지금 나한테 장난치고 있는 거다!”

 

시인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배어 있는 시이다. 시에서 화자는 작가와 일치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와 이 시를 쓴 작가와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왠지 화자와 작가가 일치된다. 그래서 더 코 끝이 찡해진다. 대작, <토지>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그녀가 벌였던 사투는 그녀가 그 자신으로 하여금 나는 지금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책상 하나 안고 살아왔다.” 자신의 유배지에 놓인 하나의 물품은 책상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자유인인가, 아니면 유배지에 유배된 죄인인가를 분간하기 힘들 때가 있다. 뭐 하나 새로울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유배된 삶이라 정의 내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한숨을 내쉰다. 창세기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아담때문이라고, 그에게 탓을 돌리기도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원초적인 조상.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더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 그 절망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시인이 자신의 유배 같은 삶의 이유를 역신이었을지 모르는 조상에게서 찾지만,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하면서 유배지에서의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인은 유배 같은 삶이지만, 그 유배 같은 삶에서 책상 하나 안고 살며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책상에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유배 같은 삶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루어내지 못했을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 그래서 그의 유배 같은 삶은 유배를 벗어난 참 자유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의 삶, 책상 하나 안고, 평생을 글쓰기와 씨름한 삶, 그 고단함이 '유배'로 표현되고 있는 이 시는, 한 자리에서 유배당한 것처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각자 맡은 바 '소명'을 붙들고, 바로 그 자리에 '유배'당한 것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야 할 것이다. '유배' 같은 삶이 나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그것 만이 유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Posted by 장준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