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2021. 4. 17. 16:06

[시론] - 황인숙의 시 ‘떨어진 그 자리에’

 

언제까지라도

떨어진 그 자리를 지킬 고양이였는데

어떤 모진 발길이 쫓아버렸을까

부디 그 아가씨가 데려간 것이기를!

아, 나도 떨어뜨려버린

그 고양이

 

ㅡ 황인숙의 시 ‘떨어진 그 자리에’ 부분,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 수록

 

이야기는 화장을 하다 떨어뜨린 화장수 뚜껑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바닥에 떨어진 뚜껑을 찾으려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찾아낸 뚜껑. 주우려다 “떨어진 그 자리에” 있는 뚜껑을 보며 시인은 “지난 가을 늦은 밤”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후암동 종점에서 시인이 본 것은 “문 닫힌 가게 앞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노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왜 풀 죽은 얼굴로 가만히 엎드려 하염없이 찻길을 지켜보고 있을까? 시인의 짐작은 그 고양이가 누군가에 의해 유기된 것에 이른다. “누군가 차를 몰고 지나가다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 쌩하니 가버렸나 봐.”

 

어떤 아가씨가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칠 뿐 하루의 일과로 인하여 피곤한 시인이 가엾은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양이를 지나쳐 시인은 집에 이르러 깊은 잠에 빠졌다. 동틀 때 잠에서 깨어나 시인의 머리를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난 것은 어젯밤 그냥 지나쳐버린 그 가엾은 고양이였다. 그래서 시인은 “가책에 싸여 달려갔다.” 그러나,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그 고양이는 떨어진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지 않았다. 누가, 어떤 모진 발길이 “떨어진 그 자리를 지킬 고양이”를 쫓아버렸을까?

 

베네딕도(Benedict of Nursia) 성인의 '정주(Stabilitas)'라는 개념이 있다. 정주란 자기 자신 곁에 있는 것, 즉 자신의 암자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암자에 머무르며 너 자신과 노동에 집중하여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큼 너의 성장에 이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도 나온다. 한 수도승이 아르세니오스 원로에게 말했다. "저는 금식도 못하고 일도 못하니 나가서 병자라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괴롭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악의 싹을 알아본 스승은 그에게 말했다. "가서 일하지 말고 쉬면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거라. 그러나 암자를 떠나지는 마라!"

 

무슨 일을 하든 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일은 일종의 수행처럼 여겨져 왔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한 곳에 정주하여 머무르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러한 것을 허용치 않는다. 모든 것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간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현상을 일컬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고 불렀다. 사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액체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러한 ‘안정적인 삶’의 향수에 젖어, 액체처럼 유동하는 사회를 힘들어 하며 견딘다.

 

더군다나 느닷없이 불어 닥친 바이러스 팬데믹 현상으로 인하여 삶의 안정성은 더 위협받고 있다. 비즈니스가 묻을 닫아야만 하는 현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다녀야 하는 현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한숨 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불안에 떤다. 문닫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 목회를 그만 두고 다른 직업을 갖는 목회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마음을 아프게 한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지키던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는 현실 앞에서 “떨어진 그 자리를 지킬 고양이였는데 어떤 모진 발길이 쫓아버렸을까”라며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지는 시인의 문장을 보며, 떨어진 그 자리를 신실하게 지킬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모진 ‘발길’에 의해 그 자리에서 쫓겨난 모두가 “부디, 이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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